제주4.3 도령마루 해원상생굿..."이제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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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도령마루 해원상생굿..."이제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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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명 원혼 달래는 굿판 펼쳐져...희생자 기리는 방사탑 건립
'순이삼촌' 현기영 작가 "수난의 땅 진혼되기 위해선 누명 벗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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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4.3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제주큰굿보전회 서순실 심방이 '시왕맞이 초감제'를 집전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해태동산이란 이름에 가려졌던 제주4.3의 학살터 도령마루에서 71년만에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7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해원상생굿은 4.3 당시 도령마루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열렸다.

사단법인 제주4.3기념사업회와 사단법인 제주민예총이 마련한 이번 해원상생굿은 찾아가는 위령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4.3희생자 유족들을 비롯해 고희범 제주시장, 제주도의회 홍명환, 정민구, 강철남, 강성민 의원,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제상이 차려진 뒤로는 도령마루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여졌다. 굿판 양쪽으로는 제주큰굿보존회 회원들이 징, 북 등을 잡고 자리했다. 한 켠에는 어린 나이에 희생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항아리 뚜껑 모양의 제기가 따로 놓여졌다. 그 주위로는 동백꽃들이 장식됐다. 

굿은 영혼이 저승의 좋은 곳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시왕맞이 초감제'로 문을 열었다.

서순실 심방이 주장을 맡아 집전한 초감제에서는 이름조차 받지 못한 두살배기 어린 아기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도령마루 근방에서 희생된 66명의 원혼을 달래는 굿이 펼쳐졌다.

서 심방은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를 하나 하나 부르고 제를 올리는 사연을 고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잘 봐줄 것을 신들에게 청했다.

4.3희생자 유족과 참석자들이 제단에 절을 올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동전을 항아리  뚜껑 모양의 제기에 보시하는 의례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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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4.3희생자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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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4.3희생자 해원상생굿이 열렸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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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4.3희생자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 '도령마루와 까마귀'를 집필한 현기영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대표적인 4.3소설 중 하나인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도령마루는 현 작가의 단편작 '도령마루와 까마귀'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현기영 작가는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라는 말이 있다. 지난 70여년 동안 (4.3때) 돌아가신 분들을 제대로 위령하지 못했다. 생존 희생자라는 분들도 있다. 생존해 있지만 70년전 그 가혹한 시련을 겪으면서 트라우마를 겪어온 분들이다. 그분들에게는 오늘이 너무나 먼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난의 땅은 진혼돼야 한다. 그냥 굿으로만 진혼되는게 아니다. 진정으로 진혼되려면 그들이 뒤집어 쓴 불그죽죽한 누명을 벗기고, 제대로 대한민국 역사에 정의로운 죽음이었다는 것이 올라가야 한다. 그날 비로소 3만 원혼이 진혼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 3만의 억울한 혼을 진혼을 하려면, 제대로 제사를 지내려면 보상, 배상도 있어야 하고, 역사에 제대로 올려야 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하고,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그런 사업들을 계속 벌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산오락회의 노래 공연도 있었다. 산오락회는 이종형 시인의 시 '도령마루'를 노래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노래 말미에는 이종형 시인이 직접 도령마루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해 감동을 더했다.

안무가 박연술씨의 살풀이 진혼무 공연도 진행됐다.

마지막 순서로는 제주큰굿보존회 부회장인 오용부 심방이 주장을 맡아 저승길을 닦아 영혼을 맞아들여 위무하고 저승길로 보내는 제차인 '서천꽃밭 질치기'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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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4.3희생자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오용부 심방이 집전한 '서천꽃밭 질치기'.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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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열린 4.3희생자 해원상생굿에서 박연술씨가 진혼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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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제주시 신제주입구 교차로 근처 도령마루에서 열린 4.3희생자 해원상생굿에서 산오락회가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한편 제주민예총은 도령마루 건너편 공유지에 원혼을 위로하는 방사탑을 세웠다. 높이 3m, 지름 2.5m의 방사탑은 위령제가 열리기 전날인 5일 완성됐다. 4.3학살터에 방사탑이 세워진 것은 지난 2013년 무등이왓 해원상생굿 이후에 6년만이다. 위령제의 모든 순서가 마무리된 후 희생자들의 넋을 방사탑으로 인도하는 의식이 간소하게 진행됐다.

한편 이날 해원상생굿이 열린 도령마루는 연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동산으로, 현재는 해태동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1970년대 초 제주 개발을 목적으로 국내 유명 제과회사에서 이 근처에 해태상 2개를 설치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해태동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

옛 지명이 잊혀지면서 4.3유적지라는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져 갔다. 현재는 지난해 4.3 70주년을 맞아 세워진 안내판만이 이곳이 학살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66명의 양민들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제주시는 최근 신제주입구 교차로(7호광장)의 이름을 '해태동산'이 아닌 옛 지명인 '도령마루'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조만간 이곳에 설치된 해태상을 다른 장소로 이전할 계획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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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령마루 인근에 세워진 방사탑.ⓒ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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