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수형인 재심 '무죄'...억울한 옥살이, 70년 恨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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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수형인 재심 '무죄'...억울한 옥살이, 70년 恨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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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재심 선고공판, '공소기각' 판결
"군법회의 위법...공소제기 절차 모두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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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17일 법원 현관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종합] 제주4.3 당시 행해졌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계엄 군사재판(군법회의)으로 투옥됐던 4.3수형인들에 대해 70년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1시30분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제주4.3수형인 재심재판의 선고공판을 열고 4.3당시 행해진 군법회의 자체의 절차적 불법성을 강조하며, 피고인 18명 전원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에서 '공소기각의 판결'은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일 경우 등에서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재판부는 "과거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번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는 절차를 위반해 무효일 때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공소를 기각했다.

과거 군법회의에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불법으로, 군법회의에서 판결한 사항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소기각 판결의 사유로 공소사실의 불특정, 군법회의 심판 회부 등에 관한 절차 규정 미준수의 문제를 적시했다.

'공소사실의 불특정'은 수형인 명부나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 수형 관련 문서 등에는 피고인들의 죄명과 적용법조만 기재돼 있을 뿐,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피고인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소사실로 군법회의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확인할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사법적 처형'으로 불리는 군법회의의 절차적 규정 위반의 문제가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해 재심대상판결을 했던 고등군법회의에 관하여는 구 국방경비법이 절차법으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구 국방경비법에 의하면, 사건을 고등군법회의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법무부 장교 중에서 임명된 예심조사관'에 의한 '완전 공평한 예심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예심조사관의 조사보고를 받은 군법회의 설치 장관이 소속 법무심사관의 심사를 거쳐 사건을 군법회의에 회부한 경우, 군법회의 설치 명령에 의해 임명된 검찰관은 피고인에게 기소장의 등본을 송달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들은 일관하여 자신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떠한 범죄사실로 재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재심사건의 소송기록 등 어디에도 '예심조사' 내지 '기소장 등본의 송달'이 이뤄졌다는 사정을 찾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김○○ 등 10명에 대한 군법회의는 약 25일 동안 총 12차례가 열렸는데, 당시 재판을 받은 민간인 수가 871명에 달하며, 피고인 정○○ 등 8명에 대한 군법회의는 약 15일 동안 총 10차례가 열려 재판을 받은 민간인 수가 1659명에 달하고 있다"면서 "이와 같이 단기간에 그와 같은 다수의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군법회의에 회부함에 있어 개개인에 대해 예심조사관에 의한 예심조사 및 기소장 등본 송달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을 것이라 추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군법회의를 담당한 군 당국이 예심조사 없이 경찰의 의견을 수용해 판정·판결 내용을 미리 정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는 점 등에 비춰볼때. 당시 피고인들에 대해 구 국방경비법 제65조의 ‘예심조사’ 및 제66조의 ‘기소장 등본의 송달’을 통한 기소사실의 통고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즉, 군법회의가 법률적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불법적 판결이 이뤄지면서 구금과 투옥이 이뤄졌을 것이란 판단이다.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들에게 제기된 공소의 내용은 그 절차에 문제가 있어 모두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18명의 생존수형인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70년만에 명예를 회복하게 했다.

한편, 4.3당시 불법 군법회의의 '초사법적 처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민 4.3수형인은 약 25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 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 실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형무소가 없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돼 분산 수감됐는데,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열악한 형무소 환경 속에서 옥사하는 이도 있었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해 명예를 회복한 18명의 4.3수형 생존자들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구형법의 내란죄위반,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의 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 이적죄 등으로 1년~20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에 의해 투옥돼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평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오다, 이번에 제주4.3도민연대의 적극적 도움을 받아 구순을 넘긴 고령으로 이번에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4월19일 4.3생존수형인 18명이 재심재판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년 6개월만인 지난해 9월3일 역사적인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로부터 4개월만인 17일 역사적인 무죄취지의 선고가 이뤄졌다.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4.3수형인들은 법원 현관 앞에서 "70년만에 한을 풀었다"며 만세를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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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수형생존자들이 17일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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