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도 제대로운 '일 다운 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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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도 제대로운 '일 다운 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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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 이태협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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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협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헤드라인제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18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249만 5043명 중 구직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157만2146명으로 약 63%에 달한다.

이들 중 86%는 향후에도 일을 할 의사가 없으며 원하는 취업지원서비스도 없다고 답했다. 이 자료는 어쩌면 지금의 장애 당사자들에겐 일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장애여부를 떠나서 그러한 선택 역시 우리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자기결정이지 않은가. 그러나 위 실태조사의 내용은 지난 일 년 간 복지일자리사업 담당자로 일하면서 체감한 것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장애인들은 일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필자가 만난 거의 모든 장애인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벌이와 생계유지의 개념을 넘어 개인의 사회성과 자존감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며, 스스로를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위의 자료에서 비경제활동장애인들이 구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장애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40.9%), ‘원하는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10.4%),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8.6%),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고용주가 채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6.5%)의 순으로 나타났다. 

건강 문제로 일을 하지 않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고작 7%에 불과했다. 결코 일하기 싫거나 몸이 힘들기 때문에 취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업무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먼저 겁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취업취약계층인 장애인들의 사회참여 확대와 소득보장 지원을 위한 노력은 공공근로나 장애인일자리사업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것이 근무자로서 한 사람의 역량을 발휘하게끔 하는 ‘일 다운 일’이 아니라 일 할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안쓰러운 시선으로 일거리를 쥐어주는,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로서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장애인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그저 돈을 벌고 싶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 혹은 반대로 왜 취업의지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노래를 잘 못 하고, 수학을 못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 것과 같이 다양한 자질이나 개성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장애요인을 파악해야함을 고려할 때, 그것으로 어느 한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규정할 수는 없다. 

업무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제를 상정해두고 매월 통장에 월급을 꼬박꼬박 넣어주기만 하는 연금형 일자리는 장애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도리어 이들의 능력을 제한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억누를 뿐이다.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포드 공장에서는 신체장애인이 무려 전 공정의 절반 이상에서 일하고 있다.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전체 조립공정에서 두 다리가 없어도 가능한 공정, 한쪽 다리가 없어도 가능한 공정, 두 손이 없어도 가능한 공정, 한쪽 손이 없어도 가능한 공정,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가능한 공정 등을 각각 파악해 장애인들이 본인의 회사에서 얼마나 일 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 그 자리를 모두 장애인 직원들이 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기업의 가치관으로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이 없다. 포드의 사례처럼 장애인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일 할 수 있는 평범한 직무들이 도처에 수 없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찾아내고 다듬기 위한 연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센터에 내년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신청해 일을 하고자 하는 한 활동가가 있다. 그 활동가는 소득이 생겨나면 기초생활보장급여에 공제액이 발생해 급여와는 상관없이 매월 똑같은 돈을 갖고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일 하는 것을 선택했다. 

차라리 일을 하지 않으면 교통비와 식비를 줄여 조금이나마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였다. 이런 활동가들의 의지를 위해서라도 당사자를 생각한 일 다운 일자리가 준비되었으면 한다. <이태협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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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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