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철 교수 '고별강연', "역사의 주조자 같은 저널리스트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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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철 교수 '고별강연', "역사의 주조자 같은 저널리스트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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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앞두고 강연회...'아스팔트에서 살 준비는 되어있는가'
제주도 언론학 박사 '1호'...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개과 20년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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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고별강연을 하고 있는 고영철 교수.ⓒ헤드라인제주
"기자가 되고자 한다면, 역사의 주조자로서의 저널리스트가 되라."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고영철 교수(64)가 4일 '고별 강연'을 통해 이 시대 저널리스트의 상(象)에 대해 강조했다.

이날 오후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1층 강의실에서 열린 고 교수의 고별강연 주제는 '아스팔트에서 살 준비는 되어있는가'.

고 교수는 이날 자신의 대학시절 이야기에서부터 신문과 첫 인연을 맺게 된 배경, 그리고 제주대학교에서 제주지역 첫 언론분야 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내용 등을 설명한 후, 자신이 생각하는 기자의 상에 대해 피력했다.

'관광학'을 전공한 고 교수는 대학 4학년 때 <모택동>(S. 슈람, 1979)을 국내에서는 첫 번역한 김동식 교수(작고)를 만나게 되면서 사회과학 관련 서적을 폭넓게 접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졸업 후인 1980년, 우연히 제주대학교 신문사의 조교로 채용되면서 언론 분야 일을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하게 됐다.

대학신문사에서 조교와 전임 편집국장, 그리고 부주간을 역임하며 <제대신문>을 주간발행으로 격상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공부에 신문을 등록한 것을 비롯해, 월간, 순간, 격주간, 그리고 주간 등 발행주기를 순차로 높여 나갔다.

"잠시라고 생각했던 신문사가 천직이 됐다"는 고 교수는 이 인연을 계기로 언론학을 본격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1982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 입학했고, 이후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출신에서 언론학 박사 1호로 꼽힌다.

학위를 받은 후 제주도에서 언론 관련 강의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제주대에는 언론분야 학과가 없었다. 1988년 제주대에서 교육부에 신문방송학과 신설을 요청했지만 불허됐다.

"당시 모 국회의원 말에 따르면, 교육부 차관은 취업도 안되는 학과, 데모나 하는 학과 만들어서 뭘 할려고 하느냐며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1988년 9월부터 중앙대에서 신문편집제작론 강의를 시작한 고 교수는 1989년 제주에 내려온 후 한라대학교에서 일시적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주대에 언론분야 학과가 개설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1990년 제주대에서 언론 관련 과목 개설 요청을 했다고 한다.

고 교수는 "학과 신설이 어려우면, 일단 강의과목부터 먼저 개설하자는 생각이었다"면서 "학과 개설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쟁취하고자 했다"고 소회했다.

당시 여러 학과에 언론분야 연계과목을 개설했는데, 윤리교육과의 <현대사회와 매스컴>(1993), 관광개발학과의 <공공홍보론>(1995), 정치외교학과의 <여론과 선전> 등이다.

고 교수는 이 부분에 있어, "제주출신으로 처음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강의할 과목이 없어 방황하는 것을 보고, 당시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국민윤리교육과 고성준 교수와 사회교육과 김항원 교수(당시 교수평의회 의장)가 제주대학교 교양과정부에 어렵게 <현대사회와 매스컴>교과목을 신설해주어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면서 "당시 두 분 교수님이 노력해 강의를 신설해주지 않았으면 제주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언론 관련 강의과목을 조금씩 늘려나가며 학과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끝에 1997년 제주대에서 언론홍보학과 개설이 확정됐다. 교육부에 가서 직접 설득을 하고, 동분서주 발품을 판 것이 주효했다. 정부 차원에서 확정될 당시 총무처 고위직으로부터 격려 전화까지 받았다고 했다.

제주지역에서 첫 언론학 분야 학과가 개설되는 순간이었다. 언론홍보학과는 1998년 3월 정원 35명으로 시작해, 2002년 2월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후 2003년 3월 대학원 석사과정이 신설됐고, 2009년에는 박사과정이 개설됐고, 현재 개과 20주년을 맞고 있다.
▲ 4일 고별강연을 하고 있는 고영철 교수.ⓒ헤드라인제주
고 교수는 언론홍보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법정대학 학장 겸 행정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언론학회 및 한국PR학회, 한국지역언론학회, 출판문화학회, 한국방송학회 등에서 부단한 활동을 펼쳤다.

제주지역에서는 언론개혁제주시민포럼 창립을 주도해 현재까지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14년 11월 제주언론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교수네트워크(진교넷)'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재직기간 지역언론 관련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제주언론의 보도방식과 수용자>(공저, 2017)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2011년 5월에는 현 사회과학대학 건물 2층에 학생들이 독서와 과제를 병행할 수 있는 무인관리 도서관인 '구라(口羅)도서관'을 개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고 교수는 "도서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 도서관이 학생들의 원대한 꿈을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 말미에 고 교수는 언론학도에게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하나는 자신이 '언론홍보학과 개설'을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와 맞물려, "한번 목표를 세웠으면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번째는 '역사의 주조자로서의 저널리스트'가 될 것을 당부했다.

2차 대전 당시 종군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1902-1968)의 <분노의 포도>, 23세에 세계여행을 나서고 상해에서 기자가 되어 극동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했고 이후 4개월간 혁명가 모택동과 인터뷰를 한 애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그리고 우리나라 고(故) 리영희 선생(1929-2010)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역사의 주조자' 예로 들었다.

일제시대 약 16세부터 32세 때까지 만주, 상해, 광동 등지에서 중국과 조선공산당 등에 가입해  조선 독립과 중국인민 해방을 위해 장개석 군대와 싸우던 한 무명의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 활동상을 여러 주 동안 인터뷰를 통해 취재한 내용을 <아리랑>이란 책을 발간함으로써 조선인 가운데 이런 혁명가가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님웨일즈 특파원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고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밥을 먹기 위해서 기자를 하려거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낫다"면서 "진정 기자가 되고자 한다면 역사의 주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전했다. <헤드라인제주>

▲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1층 강의실에서 열린 고 교수의 고별강연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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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민 2018-12-22 15:36:13 | 175.***.***.227
존경하는 고교수님
제2의 인생에서 더 멋진도전을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2018-12-06 06:04:34 | 223.***.***.197
01학번입니다. 교수님 덕분에 꿈을 키워갈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2018-12-05 09:49:57 | 211.***.***.11
97학번입니다..
우와.. 우리 관광개발학과 교수님이셨는데.. 97년에 언론홍보학과 개설 되고 그때 저도 언론홍보학과 교수님 수업 받았었는데.. 마케팅에 관한 수업이었던거 같아요.. 마케팅효과?? 뭐 그런.... 지금은 마흔이 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이렇게 기사에서 접하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대학때 제일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세요..
벌써 정년퇴임이시군요..
교수님.. 매일 매일 건강하세요.. ^^

음... 2018-12-05 09:27:52 | 112.***.***.188
존경합니다. 제주도 언론발달에 공이 지대합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고별 2018-12-05 07:27:18 | 175.***.***.167
좋은 말씀이기는 하나 요즘 기자들이 그런 공공적 의식 있기나 할까요
월급 먼저 계산하고 직업적 멋으로 생각해서 입사했는데 입사후에 그런 의식 생길까요
너무 헐값에 아무렇게나 기자를 뽑고 기레기 양산하는게 사회적 골치가 된 세상이죠
언론사는 기자 못구해 벌벌 거리고 소양 부족한 기자들은 이 신문 저 신문 입사 퇴사 반복하는 아주아주 가벼운 존재로 전락했슴다. 개탄스러운 세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