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재판' 4.3수형인들,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상태바
'재심재판' 4.3수형인들,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군법회의 '재심 재판' 개시 즈음 입장
"70년 죄인의 굴레, 억울함 풀어줬으면..."
6.jpg
▲ 29일 제주4.3 재심 재판을 앞두고 수형 생존자들이 소회를 밝히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제주4.3 당시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 재판이 29일 시작된 가운데, 재심 청구인인 제주4.3수형 생존자들이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호소했다.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은 이날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에서 재심 재판에 따른 기자회견을 갖고 재심 개시에 따른 입장을 밝혔다.

당시 23세이던 현우룡 할아버지(94)는 불법 군사재판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데 이어, 출소 후에는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정보부에 지원한 넷째 아들은 시험에는 통과했지만, 신원 조회에서 연좌제에 걸려 결국 채용되지 못했다.

현 할아버지는 "아무 죄 없이 7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이유 없이 잡혀 옥살이를 했다는게 너무나 억울하다. 4.3희생자 신고도 혜택을 바란게 아니라, 신고를 안하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까봐 한 것"이라면서 "4.3은 늘 족쇄였다. 이 재판에서 죽기 전에 명예는 회복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4.jpg
▲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29일 재심 재판을 받기 위해 재판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인천형무소로 끌려갔던 조병태 할아버지(90)는 출소한 뒤에도 동네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 모습에 두려움에 떨다 군 입대 영장이 나오자 죽음을 피해 입대했다고 소회했다.

조 할아버지는 "형무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이 전부 핏덩이가 돼 입을수가 없는 상태였다"면서 "(집에)내려왔는데 잡혀가기 전이랑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들이 불려 나갈때 마다 죽음을 당하러 가는 걸 알고 있어 내 차례가 올까봐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제일 억울한 건 형제들이 한날 한시에 죽음을 당했다는 양근방 할아버지(86)는 인천형무소에 끌려갔다온 뒤에도 낙인이 찍혀 하는 사업마다 고발을 당해 파산을 당했고, 자식들도 연좌제로 인해 현역 입대를 못하고 방위병으로 근무해야 했다.

양 할아버지는 "아무 죄 없는 내가 총을 세번씩이나 맞았고, 형무소에까지 잡혀갔다 와 너무 억울하다"며 "죽기 전 억울함을 꼭 풀고 가야지 않겠나"라며 재심 재판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저희 재판을 두고 시비도 있었다. 재심 사안이 아니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법원은 재심결정을 내린바 있다"면서 "이것 또한 도민들의 성원과 지지, 국민들의 응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지법 재심결정한 재판부는 참으로 진지하고 우리 수형생존인들의 눈물어린 진술을 끝까지 경청해 줬다"면서 "저희는 4.3진상에 대한, 역사에 대한 증언은 수형 생존인들이 5차례 걸쳐 법정 진술이 진실 이외에 없다고 본다. 이번 재심 재판에서도 이분들이 70년 천추의 한이 풀어지는 역사적인 그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 대표는 "공정한 재판을 바란다. (지금도)너무 늦었다"면서 "70년이 지났다. 더 이상 늦지 않도록 조속한 판결을 간곡하게 바란다"고 강조했다.

청구인들의 법정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재심에서 중요한건 피고인이라 명명된 18명의 범죄사실을 검사가 특정해야 하는데, 이분들이 어떤 범죄를 지었는지 기록이 없다"면서 "아마 재판이 길지 않을거고 저희 변호인으로서는 오늘 즉일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임 변호사는 "(즉일선고가 이뤄지지 않아도)재심이 한번정도 재판을 속행해 11월 끝나고, 11월이나 12월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걸로 끝나는게 아니고 1심이기 때문에 항소.항고가 남아있다"면서 "지금 분위기 보면 검사가 항소.상고할 것 같지는 않아서 이번에 18명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확정판결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5.jpg
29일 제주4.3 재심 재판을 앞두고 수형 생존자들이 소회를 밝히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한편 제주지방법원은 이날 오후 4시 201호 법정에서 4.3생존수형인 양근방씨(86)를 비롯한 18명이 청구한 4.3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재판을 개시했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18명의 4.3수형 생존자들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구형법의 내란죄위반,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의 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 이적죄 등으로 1년~20년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에 의해 투옥돼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평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오다, 이번에 제주4.3도민연대의 적극적 도움을 받아 구순을 넘긴 고령으로 '재심'을 청구해 70년만에 정식 재판을 받게 됐다.

재심청구소소송에서 법원이 당시 재판기록이나 판결문 등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정황들을 볼 때 재심사유가 충분하고, 불법 구금과 조사과정의 가혹행위 실체가 인정된다고 밝힌 만큼 이번 재심재판에서 수형인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검찰도 재심개시 결정에 즉각 항고를 포기한 점 등을 미뤄 볼 때, 재심재판의 진행속도도 큰 대립적 쟁점 없이 빠르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통한 명예회복이 이뤄질 경우 앞으로 재심청구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4.3당시 불법 군법회의의 '초사법적 처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민 4.3수형인은 전체적으로 약 25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고등군법회의로 불리던 불법 군사재판이 자행된 시점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부터 7월까지 각각 14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실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형무소가 없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돼 분산 수감됐는데,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열악한 형무소 환경 속에서 옥사하는 이도 있었다.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 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