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불법 군사재판, 70년만에 재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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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불법 군사재판, 70년만에 재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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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수형인 18명 청구 '재심' 청구 수용
법원 "불법 구금.폭행.고문 등 인정, 재심사유 존재"
군사재판 첫 재심 개시...'억울한 옥살이' 恨 풀릴까

제주4.3 당시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에 대해 첫 재심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경찰과 형무소로 끌려가 모진 고초와 희생을 당하고, 불법적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4.3 수형 희생자들은 70년만에 진실규명을 위한 재심 재판을 받게 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는 지난해 4월19일 4.3 생존 수형희생자인 김모씨를 비롯한 18명과 제주4.3도민연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4.3 당시의 불법 군사재판(국방경비법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소송에서 청구인측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다고 3일 선고했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4.3수형인은 4.3 당시 전주형무소 생존자 9명, 인천형무소 생존자 6명, 대구형무소 생존자 2명, 마포형무소 생존자 1명 등이다.

이들 대부분 모두 현재 구순의 나이로, 1948년과 1949년 제주도에서 이뤄진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초사법적 처형'이 자행됐다는 것이 이번 재심청구의 중요 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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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70년전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수형 생존자들이 지난해 법원에 재심청구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법원은 그동안 청구인들이 주장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재심사유에 대한 심리를 진행해 왔는데, 최종적으로 재판기록이나 판결문 등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정황들을 볼 때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심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청구인들을 수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권적인 결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 당시 군법회의에 의한 사법적 판단이 이뤄진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사법적 판단이 이뤄진 과정에서는 불법 구금과 조사과정의 폭행, 고문 등 가혹행위가 가해진 것으로 인정된 것으로 재심결정의 결정적 사유로 제시됐다.

우선 재심대상 판결의 존재여부와 관련해,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당시 재심청구인들이 교도소에 구금된 것이 '유죄의 판결'에 의한 것인지, 군.경의 임의적인 처분으로 불법적인 구금이 이뤄진 것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유죄의 판결'이라 함은 특정인이 어떠한 형법법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확정하고 해당 법률에 따른 위반자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사법기관의 유권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같은 '사법기관의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판단 권한이나 판단 과정에서의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이는 판결의 정당성이나 적법성에 관한 문제일 뿐, 이로써 판결 자체의 성립이나 존재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4.3당시 청구인들을 구금한 것이 단순한 군.경의 임의적인 처분에 의한 불법적 구금 차원이 아니라, '사법기관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당시 군법회의가 일제의 계엄령(제11조), 구 국방경비법(제32조, 33조) 등에 따라 청구인들에 대해 적용된 조목에 관한 재판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당시 실제 제주도에 군법회의가 설치돼 운영됐던 것이 사실로 판단되는 등의 정황을 들었다.

법원은 "청구인들을 수형자 신분으로 수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를 가능하게끔 하는 유권적인 결정이 필요했을 보이는 점을 종합하면, 실체적 정당성이나 절차적 적법성 여부를 떠나, 당시 재심청구인들의 형벌법규 위반 여부 및 그 처우에 관한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었고, 그에 따라 청구인들이 교도소에 구금됐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어 재심을 해야 할 이유와 관련해, 불법 구금과 조사과정의 가혹행위 실체가 인정된다는 점을 제시했다.

법원은 "제헌헌법과 구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사람을 체포․구속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고, 영장이 발부된 경우라도 구속기간은 최장 40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고 전제, "그러데 재심 청구인들의 경우 구속영장의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일부 재심청구인들은 40일을 초과해 구금됐거나 조사과정에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청구인들에 대한 불법구금 내지 가혹행위는 제헌헌법 및 구 형사소송법의 인신구속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구 형법 제194조가 정한 특별공무원직권남용죄 등에 해당되므로,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가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번 재심개시 결정과 관련해, 유죄의 확정판결 및 재심 이유의 존재는 인정되나 기록 멸실 등의 사유로 재심개시결정 이후의 본안 심리가 사실상 곤란한 경우라 할지라도, 공소사실의 특정과 그에 대한 입증은 검사가 해야 하고, 법원으로서는 재심개시의 요건이 충족된 이상 본안 재심개시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본안재판을 진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즉, 당시 재판기록 등의 내용이 부족하더라도 공소사실과 관련한 부분의 입증 책임을 검사에게 있고, 재심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재심청구인들이 육지로 이송되어 교도소에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들로는 재심청구인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및 판정(判定), 언도(言渡)일자, 형량 및 수감교도소가 기재돼 있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군법회의분) 수형인명부', 그리고 청구인들 중 일부에 대한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 수형관련 문서가 남아 있다.

반면 재심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수형인명부 등을 주심으로 재심 본안심리는 문제 없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재심청구인들을 지원하며 4.3 수형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규명운동을 펼쳐온 제주4.3도민연대측은 이번 재심 결정은 4.3수형 희생자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이번 재심청구 소송 과정에서 "1948년과 1949년 군법회의는 민주국가에서 재판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또 판결문도 없는 '초사법적 처형'이었다"면서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초법적, 무소불위 국가공권력으로 18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4.3당시 성명불상의 군인들과 경찰에 의해 불법 체포돼 억울한 감옥살이에 처해졌다"고 강조했다.

양 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으나,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이제 구순을 넘긴 고령으로 아직까지도 평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4.3 족쇄를 풀기 위해 재심청구 소송에 나선 것"이라고 박혔다.

4.3 당시 실형을 언도 받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형무소가 없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돼 분산 수감됐는데,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열악한 형무소 환경 속에서 옥사하는 이도 있었다. 또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 명령에 따라 총살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70년 전 군사재판의 실체와 초사법적 불법성이 이번 재심을 통해 드러나면서, 4.3 수형 희생자들의 억울한 한이 풀릴지, 이제 관심은 곧 시작될 재심 재판으로 모아지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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