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감수성 증진', 자립생활 권리연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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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감수성 증진', 자립생활 권리연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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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임연정/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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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정/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헤드라인제주
작년 11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지냈던 고향을 떠나 나는 이곳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또 업을 옮겨 왔다. 나의 일터인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두는 장애인 당사자 기관이다. 

나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이, 또 비단 장애인만이 아닌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으나 그 삶의 질이 너무도 무참히 차별받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는 일에 매료되어 지금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업이 가진 의미와 무게에 비해 6개월 남짓한 일꾼으로 나는 아직 너무도 부족함이 많지만 나에게 맡겨진 일들의 본질인, 그저 자신의 삶을 사람답게 살고자하는 의지가 나를 채워 주고 있고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막연하게 전공을 이어 장애인복지관 또는 유관기관에 일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잡지 못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잘 된 낙방이라 생각하지만 그 당시는 꽤나 씁쓸해 했었다. 

장애인복지를 한다는 곳에서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걸을 수 없어서 ‘클라이언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부적절하다는 것이 낙방한 대부분의 이유였다. 물론 그 시절은 ‘장애인 당사자주의’라든가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이 미비하던 때이긴 했으나, 그래도 그들의 말에서 장애인을 분명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던져지는 시선들은 나를 나의 장애에 대해 더욱 부정하게 만들었고, 의료적 재활로 신체의 기능이 최대한 비장애인과 비슷해지지 않으면 내 삶이 의미가 없을 것만 같은 편견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장애인의 삶과 주체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은 대부분 그러했다.

내가 만나온 사람들은 나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장애인도 우리처럼 똑같이 생활하고 다를 게 없는지 몰랐어요.’ 라며 밝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와 똑같이 라니…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무언가 맘이 편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이곳에 와서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이 잘 지내고 있지 않았던 나였음을. 그저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진 환경과 사회구조 속에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많이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들통 나면 마치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아무렇지 않은 듯 숨겨 놓고 있었던 나만 아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센터에 와서 내가 처음 배운 말은 장애감수성이었다. 감수성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내 나름의 정의는 ‘내가 직접 겪어 보지 않았어도 (삶의 경험과 지혜로) 상대방이 처한 입장을 미루어 짐작하여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반응’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사고 이후 갖게 된 나의 장애에 대해 공감 받지 않는 환경에서 오히려 외부로부터 장애를 극복하여 비장애인처럼 살아내야 하고 그렇게 살아낼 때야 말로 나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된다는 왜곡된 정상화(Normalization)를 강압 받던 시간을 통해, 이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또 이 폭력을 공감할 누군가가 없는 환경이 삶의 주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옴을 깨달게 되었다. 그렇기에 감수성이 가진 그 뜨거운 의미가 비뚤어진 사회구조 속에 피해 받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아 줄 시작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난 4월 장애인자립생활보장을 위한 전국거점 순회투쟁이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6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전국의 장애인 당사자와, 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지역사회 내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찾기 위한 꽤 큰 규모의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정부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확정하여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명시한 바 있으나 비용추계가 전무한 현 상황에서 그 실천에 의지가 의심되고 있다. 그렇게 사안의 시급함을 공감하지 못한 듯 한 정부의 움직임에 지금 이 시간까지도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을 장애인들의 비참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공감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행보에 함께 하는 것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고, 때로는 열정의 순수를 위협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행보에 함께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더욱 속도를 내고 싶다. 이 행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것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렇게 아직 사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사회구조가 그 시야를 자꾸만 가리려 해도 그것에 저항하고 연대함으로 우린 장애에 대한 감수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 다름에 대한 감수성으로 더 이상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박탈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구현해갔으면 한다. <임연정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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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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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동쓰레빠 2018-05-24 12:19:35 | 39.***.***.35
감수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되는 글이네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완전한 사회참여 실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기관인 만큼 많은 기대를 해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