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4.3 추념사', 역사적 관점논란에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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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4.3 추념사', 역사적 관점논란에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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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추념사를 통해 본 제주4.3의 성격과 과제
"국가폭력, 무고한 양민 학살"...'학살사건'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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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엄수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추념사를 낭독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헤드라인제주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엄수된 제70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를 통해 제시한 내용은 제주4.3의 성격을 두고 이어지고 있는 역사적 관점 논란에 쐐기를 박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메시지로 평가된다.

제주4.3 추념식에 대통령의 참석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두번째로, 12년 만이다. 국가기념일 지정(2014년) 이후 국가행사로 격상된 이후 행사로는 처음이다.

4.3에 대한 국가원수의 공식사과 역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이다.

1999년 12월 제주4.3특별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특별법을 공포하고, 4.3중앙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을 때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공식 사과했고, 2006년 위령제에 참석해서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데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사과'는 12년 만에 재차 나온 국가원수의 사과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됐다.

노 대통령이 4.3진상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가공권력의 잘못을 처음 인정하며 사과를 한 것이라면, 이번 문 대통령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4.3의 역사적 진실, 그리고 이후 오랜 기간 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데 대해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측면의 사과였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 메시지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게 다가왔다.

첫째, '제주의 봄'을 첫 머리와 매듭 말의 키워드이자 화두로 삼으면서 희망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 점이 특징이다.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의 봄'을 전하러 왔다고 전하면서,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고 했다.

추념사 마지막 키워드 역시 '제주의 봄'이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둘째, 그동안 제주4.3의 성격과 관련해 '4.3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학살' 내지 '국가폭력' 사건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제주4.3 당시 '학살' 자행 부분을 언급했다.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제주4.3과 관련해서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이란 부분은 자주 언급돼 왔으나, 국가원수가 구체적이고 실체적 사건과 추정 사망자 수까지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4.3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음을 대통령이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는 제주4.3에서 무고한 양민 희생이 발생하게 된 이유도 '국가공권력'이고, 이의 원인도 '국가공권력의 과잉대응'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의 '학살' 강조는 앞으로 제주4.3의 새로운 명칭, 즉 '정명(正名)' 논의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 자행된 사건으로 규정된다면 '제주4.3 민중항쟁' 내지 '4.3민중 학살사건' 등으로의 '정명' 주장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셋째, 문 대통령의 '사과'는 단순히 4.3당시 국가공권력의 잘못 뿐만 아니라 이후 오랜기간 이어져 온 진실은폐 및 연좌제 탄압 등 '국가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모두 포괄하여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사과'라는 말을 꺼내들기 제주도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 및 '진실규명 노력'의 구체적 유형 및 내용에 대해서 세세히 언급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랜 세월 4.3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했던 제주도민들의 항거 부분도 강조했다.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4.3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온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의 단체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

또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면서 '순이삼촌' 작가 현기영 선생을 비롯해 김석범 작가, 강요배 화배, 조성봉 감독, 오멸 감독, 김동만 감독, 임흥순 감독, 故 김경률 감독, 가수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까지 일일이 모두 거명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댜"면서.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있었기에 4.3은 깨어났다"고 했다.

넷째, '국가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 희생' 내지 '학살'이란 4.3의 진실을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선언했다는 점이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는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준동되는 '4.3 흔들기' 내지 '역사 되돌리기' 시도 등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함께, 더 이상 4.3의 성격 내지 진실을 갖고 논란이 되풀이 되서는 안될 것이라는 강한 의미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 부분에 있어,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면서 일부 보수우익세력의 '4.3 흔들기'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했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중단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도 밝혔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도 약속했다.

다섯째,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정리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이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입법과제를 언급한 것이다. 4.3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위한 4.3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보상과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4.3의 추가 진상조사나 4.3수형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의 내용이 4.3특별법 개정안에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포괄적으로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말미에는 '4.3 진상규명'의 의미에 대해서도 별도 언급됐다.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마무리는 '제주의 봄' 희망 메시지였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추념식이 끝난 후 자리를 옮겨 유족들과 오찬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고 추념사에 관해 소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제주4.3을 부정.폄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4.3의 진실이 똑바로 우뚝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추념사에 대해 제주 정치권은 물론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제주4.3연구소 등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완전한 4.3문제 해결 약속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의 이날 추념사는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이 자행된 국가폭력사건이라는 점 등 4.3의 역사적 사건 진실에 대한 분명한 정리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게 한다.

이는 제주4.3진상규명 운동사(史)에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역사적 발언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단호한 입장으로, 4.3성격 및 정명 논란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4.3의 역사적 관점 정립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우익세력의 준동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3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념식에 참석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뒤돌아서자 마자 제주4.3을 "남로당 좌익 폭동"으로 규정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불필요한 논쟁을 하루 속히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완비가 최선이다. 제주4.3특별법을 하루속히 서둘러 개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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