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이 두 돌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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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이 두 돌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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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은경 / 서귀포시 영천동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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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경 / 서귀포시 영천동주민센터
세상을 살며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복길이와 만난 일이다.

복길이는 산부인과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무려 한 달을 고심하여 지은 내 아이의 태명이다.

복길이는 비 내린 다음 날 고사리마냥 쑥쑥 자라 며칠 후면 두 돌을 맞이한다.

지금이야 ‘아이를 키운 것은 팔할이 시간이었다’며 웃으면서 말하지만 지난 3년 동안의 일을 돌이켜보면 임신·출산·육아의 전(全)과정은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엄마들에겐 생소하고 힘든 과정이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임신을 하면 입덧을 하고 살이 찐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그로 인해 오는 변비, 치질, 골반통과 감정 기복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분만 과정도 학습되지 않았다. 그저 임신과 출산이란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라는 인식만 있었을 뿐이다.

병원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가(假)진통과 진(眞)진통을 겪고 분만실에 입장하면 관장, 제모, 내진의 ‘굴욕 3종 세트’가 기다리고 있다.

분만실에서의 나는 한 마리의 울부짖는 짐승이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순간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아이의 아빠가 간호사의 지도에 따라 탯줄을 자르고 나면 또 한 차례 아이만한 크기의 태반을 꺼내고 봉합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분만이 끝이 난다.

짧게는 보름, 길게는 두 달이 넘도록 오로를 배출하느라 아이와 함께 엄마도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며,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화장실 가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모유수유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직 힘이 없는 아이는 엄마 젖을 먹다가 잠들어버리기 일쑤이며 잘못된 방법으로 수유를 하게 되면 젖몸살이 오기 십상이다.

‘조리원 천국’을 지나 집으로 가면 기약 없는 ‘100일의 기적’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지난 12일 기존의 저출산 정책이 여성을 아이를 낳고 인구를 늘리는 수단으로만 다루고 있어 근본적으로 재고하라는 여성가족부의 권고가 나왔다.

임신과 출산은 그 자체로 의미있고 또 존경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추상적으로 미화시키지 않고 임신과 출산의 민낯을 마주하여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며 산모의 인권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건강과 삶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은경 / 서귀포시 영천동주민센터>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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