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제주4.3, 비극으로 끝내는게 아닌 내면적 가치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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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제주4.3, 비극으로 끝내는게 아닌 내면적 가치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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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주교회의, 4.3 70주년 학술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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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열린 제주4.3 7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강우일 주교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천주교제주교구>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제주4.3이 단순히 일시적인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겨있는 내면적 가치와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 주교는 2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과 한국 현대사에서의 의미'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조강연에서 강 주교는 "한국 현대사에서 4.3은 오랫동안 암흑과 침묵 속에 파묻혀 있었다"면서 "그러나 4.3의 고통과 상처를 50년 넘게 끌어안고 묵묵히 견디어온 수많은 제주도민의 한과 염원에서 싹이 돋다 200년1월 4.3특별법이 공포되고, 이후 4.3에 관한 많은 연구와 성찰, 작업이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03년 정부가 공식 발표한 '제주 4.3 진상보고서'는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됐다. 단, 강경진압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다수의 양민이 희생됐다'고 4.3의 성격을 규정했다"면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국가 공권력과 우익 청년 단체 회원들에 의한 폭력이 제주도 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족 내부의 부끄러운 참극이고, 국가의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나 이런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4.3의 한 가지 단면이고, 그러한 비극이 일어난 배경과 요인에는 이 민족 역사와 삶의 밑바닥에 흐르는 도도한 가치와 의미의 진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70주년을 맞은 맞이한 제주 4.3을 단순히 한국 현대사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비극으로 보고, 시시비비를 논하고 사회적 책임을 규명하는데 그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이제는 4.3 안에서 오랜 민족의 삶의 궤적 솜에 숨겨진 더 깊은 내면적 가치와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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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열린 제주4.3 7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헤드라인제주

이어 강 주교는 이어 4.3사건 직전 당시의 제주지역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며 "해방이후 1945년부터 1947년 사이 일본에서 제주도로 귀향한 교민이 7만명에 달했다"면서 "일이들은 본 노동현장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불공정에 문제점을 느끼며 사회주의 이론도 접했고, 조선인으로서 일상생활 안에서 민족적 차별을 경험한 이들은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과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열망을 키워나갔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러나 새로운 조국 건설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고 일본에서 귀향한 제주출신 교민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군정의 정책 부재와 실책으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뿐이었다"면서 "당시 제주에 단기간에 인구가 유입되고, 전국적으로 이어진 대흉년은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재앙이었다"며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를 묘사했다.

그는 "귀향 교민들과 제주도민들에게 또 한가지 참을 수 없는 모순적 현실은 미군정이 일제강점기때 일제의 관헌으로 동포를 압박하고 수탈하는데 앞장섰던 조선인 경찰들을 미군정의 경찰력과 행정요원으로 다시 등용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면서 "이는 시민들의 미군정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과 불만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이어 1947년 3.1절 기념대회 당시 경찰의 발포로 인한 충돌과 이에 항의한 제주도민들의 대규모 총파업, 미군정의 탄압과 4월3일 무장대의 경찰지서 습격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 사건으로 미군정은 제주도를 친 공산주의 지역으로 단정하며 진압에서 토벌로 방향을 바꿨다"면서 "이러한 미군정의 기본정책은 무차별 검거와 학살을 불러왔고, 민간인 희생자 수가 급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1948년 4월3일 무장 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세력의 목표는 남한 단독 선거의 반대와 저지였고, 선거 반대와 방해를 주도했던 세력은 제주도 남로당 당원들이었으나 도민 상당수가 동조했다"면서 "그 배경과 과정에는 제주도민 전체, 한국인 전체가 기다리고 염원했던 민족의 독립과 해방, 사회 구조악과 불의에 대한 저항, 인간의 기본적 존엄과 자유와 권리를 향한 장구한 역사의 동력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4.3은 결코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가 아닌, 민족의 해방과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사회악과 불의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추구하는 도도한 역사의 에너지가 힘차게 분출되는 가운데, 이러한 역사적 동력을 저지하려는 부정적인 반작용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희생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4.3은 조선왕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냉전시대까지 흐르는 고귀한 역사의 물줄기의 연장"이라며 "반세기 이상을 어둠에 묻히고 침묵 속에 매장된 억울한 희생을 통해 자신들안에 감춰졌던 하느님을 닮은 존엄과 영광을 이제 70주년을 맞아 만천항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강 주교의 기조강연에 이어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제주4.3 모델'의 전국화, 세계화, 보편화' 1주제발표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인 백장현 교수 및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 박찬식 박사가 참여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이어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4.3의 철학적.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2주제발표를 진행하고, 광주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담당 한재호 신부(제주교구)와 4·3 범국민위원회 박찬식 운영위원장의 토론이 진행됐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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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열린 제주4.3 7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사진=천주교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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