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나비박사' 석주명 연구소 확보...기념사업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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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나비박사' 석주명 연구소 확보...기념사업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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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핵심 석주명 연구소→기념관 리모델링 물꼬
3년간 지지부진 사업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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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연구소 전경. ⓒ헤드라인제주
우리나라의 곤충학자로서 수많은 종의 나비를 발견해 우리말 이름을 붙인 세계적인 '나비박사'이자, 제주의 인문, 자연환경 등을 연구한 제주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석주명 선생을 기리고 이를 알리는 서귀포시의 기념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서귀포시는 16일 오후6시 석주명 선생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영천동주민센터에서 지역주민과 전문가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석주명 연구소 리모델링 등 영천동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추진과 관련한 사항들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논의는 서귀포시가 석주명 선생이 지난 1943년 4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제주에 머물며 연구활동을 진행한 당시 경성제대 생약연구소(현 제주대학교 아열대 농업생명과학연구소)를 확보하고, 2월 연구소가 신축건물로 이전하면 이를 활용할 수 있음에  따른 것이다. 

기념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석주명 연구소에 대한 리모델링 착수가 근시일내에게 가능해진 것.

서귀포시는 이를 위해 지난해 사업비 26억원을 투입해 석주명 선생이 근무했던 토평동 소재 연구소 건축물과 사업부지를 제주대학교와 토지교환을 통해서 확보했다. 또한, 기존 제주대 아열대 농업생명과학연구소를 대체하는 신축 건축물을 1월말까지 완공해 2월중 신축건축물로 연구소 이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석주명 기념사업은 서귀포시가 지난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추진되는 사업으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사업비 58억원이 투입되는 정부지원사업이다. 분야별로는 기초생활기반확충사업(15억원), 지역경관개선사업(35억원), 지역역량 강화사업(8억원) 등 3개 분야로 추진된다. 

그러나 현재는 영천동주민센터 맞은편 토평 어린이공원을 영천문화마당으로 조성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을 뿐 사업 추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소를 확보하지 못해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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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기념공원 계획 평면도. ⓒ헤드라인제주

이에 제주대 연구소가 신축건물로 이전을 완료하는 내달부터는 본격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할 전망이다.

서귀포시는 향후 연구소 건축물에 대한 상태 점검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석주명 건립추진위원회 회의 및 의견수렴을 통해 석주명 선생에 대한 관련자료 수집, 연구소 리모델링 등 본격적인 석주명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석주명 박사는 일제강점기 세계적인 곤충학자로 이름을 알리며 제주에서 곤충 연구에 매진한 학자다.

자세히 보면 그는 1908년 10월 평양에서 태어나 송도고보와 1929년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박물학과를 졸업했고, 1929년 함흥 영생고보 박물교사로 근무하다 1931년 모교인 개성 송도고보에서 11년 동안 박물교사를 지냈다.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여름방학 때마다 전국을 다니면서 나비를 채집하고 분류하고 분석했으며, 특히 1940년에 영국 왕립 아시아협회 조선지부에서 발간한 '조선 산접류 총목록'은 그를 세계적 나비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주에서는 1936년 여름 한 달 동안 나비 채집을 한 바 있고, 1943년 4월부터 1945년 5월까지 2년 1개월 동안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현 제주대 아열대 농업생명과학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제주도의 인구 분포 및 생활습관 등 자연 환경을 비롯한 인문, 사회 등에 대한 현지답사와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해 총 6권의 '제주도 총서' 발간한 바 있다.

이 6권의 제주도 총서는 '제주도방언집(1947)', '제주도의 생명조사서(1949)', '제주도 관계 문헌집(1949)'이 출판됐고, 누이 석주선씨에 의해 '제주도 수필(1968)', '제주도 곤충상(1971)', '제주도 자료집(1971)'이 유고집으로 출판됐다.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종신회원 송상용 박사는 지난 2011년 열린 석주명 선생 학술대회에서 "'제주도 생명 조사서'는 그 자신의 말대로 '출판과 동시에 고전'이 됐는데, 이는 1948년 제주4.3으로 중산간 마을의 95퍼센트가 초토화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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