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면사무소 발령 첫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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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면사무소 발령 첫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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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성협 / 추자면사무소 건설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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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협 / 추자면사무소 건설담당 ⓒ헤드라인제주
추자면사무소 발령 첫날 아침. 면장님이 횡간도에 겨울 가뭄으로 우물이 말라서 식수를 공급해 주고 오라고 지시를 한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마음만 급하다. 직원들은 으레 하는 일인 듯 수협에 협조를 받아 운반선에 물을 실고 소방파출소에는 소방호스, 소방펌프를 빌려 출발 준비를 마친다.

도착한 횡간도는 꿈에서 본 듯한 섬이었다. 가구수가 8가구에 13명이 거주한단다.

빈집이 많이 보였다.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소방호스를 연결하고 50미터 높이에 설치된 식수탱크에 물을 채운다.

사는 모습이 궁금하여 집을 기웃거렸다.

모자지간인지 부부지간인지 언 듯 봐서는 모를 듯 한 노인 두분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방금 잡아온 큼지막한 감성돔 3마리를 손질하는 늙은 아들과 백발의 모친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잡으셨어요?” 늙은 아들은 아침에 갯바위에서 크릴세우로 잡았단다.

아들이 부엌으로 간 사이 할머니 옆에 앉아 겨울의 따스한 볕을 쬐었다.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가버려서 아들과 둘이서 산다고 했다. 해초를 채취해서 먹고 산다고 했다. 아들에게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공부도 못시켰다고... 깊은 한숨소리에 마음이 눌렸다.

손질한 감성돔으로 이웃 민박집에서 점심을 대접 받았다. 아침을 굶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민박아주머니가 오늘 횡재했단다. 발령받아 첫날 감성돔 회맛을 본다고 영광인줄 알란다. 웃었다. 즐거웠다.

주민들에게 행정은 무엇일까

18세기 자유방임주의 시대에는 야경국가를 지향해서 정치는 최소한의 간섭으로 자유시장 체제를 옹호 하였고, 20세기 초 대공황이후 세계는 수정자본주의 시대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누진세,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 삶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주민의 삶을 보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상은 내가 알고 있는 정치와 국가행정의 짧은 이론적 지식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공무원으로서 이론이 아닌 실질적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가 지금까지 20여년 종사했던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애정을 느꼈다.

단지 추자면 관할 유인도에 시급한 급수를 공급했다는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늙은 모친을 모시고 사는 늙은 아들의 모습에서, 한숨짓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삶의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 일거다.

더불어 살고 싶고, 웃고 울고 싶어졌다.

이곳 추자면 근무 첫날.

지금까지 공무원으로 살아왔던 20년이란 세월 저면에 깔려있는 가슴 답답함의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한 것 같다. 더불어 살아야 겠다. <고성협 추자면사무소 건설담당>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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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유미야 2018-03-06 21:23:53 | 211.***.***.85
어울리며..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쉬운듯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듯 하다..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수 있었으면....

조르바 2018-01-18 18:59:55 | 203.***.***.132
예전에 책의 부제로 쓰였던 글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작은 삶, 큰 의미'
좋은 행정은 관내 주민들을 이롭게 하지만, 좋은 생각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나 봅니다.
작은 곳에서 큰 일을 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고흐스트 2018-01-18 17:17:10 | 223.***.***.224
님과 같은분이 있어서 저 또한 20 여년간낸 세금이 아깝지 않을듯합니다

제주가즈아 2018-01-17 22:04:11 | 211.***.***.28
먼곳에 발령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앞으로도 추자도 소식 자주 부탁드립니다~!

고민돌이 2018-01-17 21:10:58 | 175.***.***.23
너무 자랑스럽고 더힘써주세요!! 언제나 응원한답니다~~

지나가다 2018-01-17 16:10:22 | 116.***.***.150
가슴 한 편이 따뜻해 지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