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소수자성에 말 걸기...'연대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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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소수자성에 말 걸기...'연대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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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한정선/ 제주장애인인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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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선 / 제주장애인인권포럼ⓒ헤드라인제주
소수자로 호명되는 존재들을 돌아보면 거기엔, 어린이 노인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 이주노동자 탈북자 농민 비정규직노동자 빈곤계층 등이 포함된다. 

소수자라 하면 ‘전체 대비 수가 적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서 소수자란 권력 위계에 있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수자(minority)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불평등하게 차별되는 사회구조적 약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비장애 성인남성’ 위주로 설계된 사회에서 비장애성인남성이 아닌 모든 존재(비장애-장애, 성인- 비성인, 남성- 지정성별 비남성, 헤테로시스젠더남성을 제외한 모든 젠더, 여기에서 후자에 해당)는 바로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인데 덧붙여 중심과 주변으로 나눠진 사회에서 중심에 속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국 국적을 가진 동양인 비장애성인남성이 한국에서 거주할 때와는 달리 비장애성인 ‘백인’남성 위주로 설계된 서구권으로 가게 되면 소수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 사회의 중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 그래서 그 구조적 위계에 따라 차별받는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을 아울러 소수자로 호명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나 여성처럼 고정된 듯 보이고 변하기 힘든 그 무엇에 더 중점적으로 소수자성을 지목하기도 하지만 이렇듯 유동적으로 변화 가능한 것에서도 소수자성은 내재돼 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사회구조적 권력의 위계 역시 상황에 따라 유동적임을 의미한다. 좀 전에 예로 든 한국 국적의 동양인 비장애성인 남성을 다시 살펴보면 그가 서구 사회에서는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겠지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여성에 비해 젠더권력, 장애인에 비해 비장애인으로서의 권력, 이주민에 비해 토착민으로서의 권력을 누리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즉 한국이라는 구역 내에서는 의식을 하든 못하든 수많은 권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에게 비정규직노동자라는 조항이 첨가되면 어떨까? 그는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소수자의 위치에 있게 되며 사용자에 비해서는 강력한 소수자성을 띠게 된다. 

작년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 구의역 참사를 떠올려보자. 이 사건에서 참사 당사자는 비장애성인한국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컵라면과 숟가락으로 상징되는, 점심시간의 휴식은 커녕 식사시간 조차 갖지 못하는 비정규직 소수자의 슬픈 비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수자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내몰려 흘리는 눈물과 상처와 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나와 연관되지 않더라도 그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는 상태 혹은 상황의 가능성만으로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자성을 기억하는 것은 과연 민주적인 것인가, 다시 말하면 다수의 지지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소수자를 소환해 그들의 권리보장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 것인가 하는 거친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다시,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서부터 이야기해 보려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제1조 1항에서 밝힘으로써 민주국가 내의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헌법을 살펴보면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며 이어 제1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적시돼 있다. 

즉 사람이 타고난 성별이나 성적취향 장애유무 출신거주지 직업 등에 의해 차별 받지 않는 세상, 기득권의 세상에서 내몰린 존재라는 이유로 천대받지 않는 세상이 바로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민주사회이다. 이를 국가가 보장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이러한 삶을 보장받는 것이 바로 국민의 권리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의 정부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그 사회는, 평등하지 못해 기울어진 사회구조를 바로 잡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만들어져나가야 할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은, 다수의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된다하더라도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는 데 힘을 얻는 자가 국가 지도자의 위치를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래야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임을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설혹 비장애성인 한국남성이라 하더라도 그 존재들 속에 내재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소수자성에 주목함으로써, 함께 차별을 철폐하는 길을 열어가야 하는 이유도, 정부를 감시 압박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배제된 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지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장애인의 분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성의 거친 항의에 담긴 상처들을 기억하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짓밟힌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려야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민주사회의 실현을 더 앞당기는 일인 것이다. 단지 다름을 이유로,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내몰린 존재들을 기억하고 그 고통의 총량을 줄여나가는 일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소수자성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연대해서 나아가기도 한다. 유동적으로 내재된 소수자성은, 교차되기도 한다. 여성이자 장애인이며 비정규직노동자이며 성소수자이고 이주민인 사람도 있다. 우리가 각각의 소수자 각각의 사회적 약자의 연대에 말을 걸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안에 내재한 소수자성을 기억해 내고 서로의 소수자성에 공감하며 상처를 어루만지고 어깨동무해 나아가는 연대의 길은 권력의 차별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게 되더라도 결코 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연대가 이루어낸 다수의 목소리, 그 거친 함성을 꿈꾼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멸시 받는 이들이 사라져가는 세상, 그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건설은, 거창한 역차별이라든가 거창한 혐오라든가 거창한 시혜적 배려 따위로 폄훼될 것이 아니라,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권리보장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권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정선 제주장애인인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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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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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2017-06-13 22:22:05 | 125.***.***.87
공감합니다. 소수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