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식의 정면교사(正面敎師), 제주4.3추념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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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념식의 정면교사(正面敎師), 제주4.3추념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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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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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헤드라인제주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던 광주의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뜨거웠다. 비단 때이른 더위에 쏟아져 내린 태양의 열기와 1만여명이 운집한 인파의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념식 내내 순간순간이 감동으로 다가왔으며, 민주주의국가의 일원으로서 가슴 뜨거운 무엇인가를 내뿜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기념식에 참석했던 50여명의 우리 4․3유족들은 그 뜨거운 현장에서 느꼈던 막중한 과제들을 품고 제주로 돌아왔다.

권위주의적인 기념식의 형식 파괴

불과 한 달 전에 치러진 4․3희생자추념식은 어떠했는가? 도를 넘어서는 통제와 속박의 굴레에서 틀에 박힌 프로그램을 되풀이하기만 했다. 

혼탁했던 지난 몇 년 간의 정국상황과 맞물려 제주4․3해결에 대한 행보가 전체적으로 지지부진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14년 4․3희생자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도 대통령은 한 번도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무미건조하고 영혼없는 정부대표의 기념사는 유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실망감과 분노만 불러 일으켰으며, 감정을 담아 목청껏 부를 제창곡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는 판이하게 진행된 5․18기념식은 대폭 완화된 입장객에 대한 보안체계와 함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하는 등 식상하기만 했던 4․3추념식을 향해 추상같이 꾸짖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대통령은 기존의 보안과 경호의 상식을 뛰어넘어 유족 및 일반 시민과 함께 민주의 문을 통해 입장하였다. 권위만을 앞세우는 최고 권력자의 등장이 아니라, 격식없고 소탈하게 최소한의 호위하에 국민과 함께 걸었다. 

이어진 기념사를 통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훗날 명연설로 남겨질 기념사의 단어와 문장마다 그의 인간적인 진정성을 품고 있었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의 본심이 묻어 있었다. 광주시민과 국민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물론 그에 따른 책임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결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유족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기에 충분한 실로 가슴뭉클한 연설이었다.

감동의 시간은 이어졌다. 기념공연의 순서로 이어진 5․18유족 김소형씨가 들려준 가슴아픈 사연에 행사장은 눈물바다로 숙연해졌으며, 무대를 내려가는 김소형씨를 쫓아가 대통령이 직접 감싸 안으며 위로해주는 즉흥적인 모습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를 두고 그릇된 과거사에 대한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을 절대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어쨌든 슬픔에 젖은 국민을 감싸 안아주는 지도자의 모습을 통해 국민이 최우선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모름지기 국가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각각의 국민들을 구성원으로 하기에 국민이 곧 국가의 주인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시스템의 모든 바탕에는 따뜻한 심장을 느낄 수 있는 인간미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친 폐쇄주의와 권위주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인본주의적 바탕이 없는 국가의 정책들이 범국민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이념을 반영하려는 의도였는지 몰라도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공식 식순에 포함되어 불려진 이 노래는 지난 수년 동안 갖가지 방법으로 통제받고 배척되어졌었다.

그래서였을까? 행사장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두손을 맞잡고 흔들거나 혹은 주먹을 힘차게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으며, 하나된 노래소리는 5․18민주묘지에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장엄한 감동의 여운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추념식을 바라며

내년이면 제주4․3이 70주년을 맞이한다. 더불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지 5년째가 된다. 어김없이 4월 3일이면 평화공원에서 추념식행사가 봉행될 것이다. 통제와 권위주의를 위시한 진부한 행사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광주5․18민주화운동과 제주4․3을 억지로 동일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번 5․18기념식을 ‘正面敎師’삼아 진정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가슴 따뜻한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 진정성이 보여지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추념식이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관부처의 깨어 있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리타분한 전례를 답습하려는 복지부동의 자세를 타파하여 보편적 시각에서 알차게 기획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는 유족회를 비롯한 관련단체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의 대승적 협조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국가기념일의 위상에 맞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유족들은 물론 전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4․3추념식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혼란스럽던 정국이 다소나마 안정되어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제주4․3을 비롯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이루어내고, 더 나아가 어수선한 한반도 주변 정세가 안정되어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충만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빌어 본다. <양윤경 /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외부칼럼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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