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제주공동체
상태바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제주공동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정칼럼] 김태석 제주도의회 운영위원장

‘한 아이가 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말은 아프리카의 속담이자, 힐러리 클린턴이 결혼 전 가정교사와 자녀를 기르면서 얻은 지혜를 엮어 놓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이는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가 온전히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공동체의 책임과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5~6만여 명의 청소년들이 학업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다른 부득이한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고 있다. 이들 학교 밖 청소년의 숫자가 39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놀음처럼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깊이 남아있는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매년 7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여러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있다.

흔히들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문제아’나 ‘비행청소년’이란 잣대로 이들을 바라본다. 사회의 부당한 인식과 편견으로 인해 학교 밖 청소년들은 관심과 지원의 울타리 바깥에 서성이고 있다. 다행히 2015년 5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으로써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대책이 행정적⋅이론적으로 정립됐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와 지자체가 연계하는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교육부와 시ㆍ도 교육청이 만든 학교 밖 청소년 도움센터 ‘친구랑’ 등에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의 경우에도 도정과 도교육청이 학교 밖 청소년 및 학업중단예방을 위한 각종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정책들이 산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상호 정책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체 학교 밖 청소년 중 10% 정도만이 이들 서비스를 이용할 뿐이라고 하니 정작 당사자들에게도 외면 받는 실질적이지 않은 전시행정이라 하겠다.

지난 4월 21일 제주도의회 운영위원회가 마련한 ‘열린의회, 제주도민의 목소리를 듣는다’ 제3차 공감소통 ‘두런두런’ 정책좌담회에서는 여러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제주지역의 학교 밖 청소년 당사자들이 본인의 소중한 경험을 들려준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이들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정책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의 자기결정과 주체적 참여를 바탕으로 교육과 노동 등 삶의 미래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방안을 마련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원은 반드시 학교 밖 청소년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이어야 한다.

실제 학교 밖 청소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생활비 지원 등 자립 지원인데 소득의 60% 이하의 일부 청소년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자립을 위해서는 노동을 통한 소득보장, 교육, 의료, 주거 지원 또한 절실한 부분이라 그 대상범위와 지원의 내용도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녀들이나 다문화가정 청소년, 탈북청소년 등 개인별 특성과 욕구에 맞는 보다 세밀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jpg
▲ 김태석 제주도의회 운영위원장ⓒ헤드라인제주
현재 도교육청의 학교 밖 청소년 정책이 현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학교로의 복귀를 위한 정책보다는 학교복귀에 중점을 두되, 청소년들이 자립하여 학교 밖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정책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내실 있는 지원을 위한 ‘지원인프라 구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끝으로 보다 정확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수립과 집행을 위해서는 객관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실태조사가 필수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입시경쟁과 성적지상주의 교육의 변화와 ‘학교’라는 공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는 ‘수능 1위’의 경쟁과 서열화의 공간이기 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고 실현되는 공간, 궁극적으로는 학교 구성원 모두의 상부상조와 공생공락, 자치와 자립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여야 한다. 기존의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를 넘어 실제 우리가 살고 생활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와의 통합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학교 밖 청소년은 우리사회의 부적응자나 낙오자가 아니다. 우리사회의 문제를 청소년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을 보면 그 사회의 미래가 보인다. 청소년들이 불행하면 그 사회 또한 불행하지 않겠는가. <김태석 제주도의회 운영위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