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재일본 동포들과 4∙3희생자 및 유가족들은 매년 4월 3일 제주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해 왔다. 위령제뿐이었는가? 제주도민 모두가 힘들고 어려울 때 감귤나무, 현금, 현물 등 그간 끝없이 베풀어준 그들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부자이고 그들의 삶이 제주의 동포들을 도울 수 있을 만큼 풍요롭고 여유 있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타향에서의 삶이, 더더군다나 일본 강점기 이후 일본에서의 우리네 동포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부지런히 삶을 일군 재일본 제주 동포들은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그곳에서 살고있는 동포와 친지들을 돕기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다.
내년 제주 4∙3 70주기를 준비하며 올해 오사카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제주의 아이들이 제주어로 노래하며 일본의 동포들을 찾아간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본의 동포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제주도 의회와 제주 4∙3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심은대로 거두고, 받은 사랑과 관심대로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70년을 한결같이 슬퍼하고 그리워한 그분들에게 이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양세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작은 시작이 큰 물결로 이어지고 제주 뿐만 아니라 육지에 살고있는 희생자 가족과 그 유족, 일본에 살고있는 희생자 가족과 그 유족에도 고르게 이 위로와 격려가 전해지게 되기를 바란다.
제라진 단원들의 연령층은 7세부터 13세까지 다양하다. 취학 전 어린이들이 제주어로 노래를 익히고 안무를 익히고 줄을 서서 노래를 불렀다. 5,6학년 언니, 오빠들은 동생들이 잘 해 낼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이 되었다. 처음 떠난 외국 연주에서 그것도 의미심장한 4∙3 위령제에서 그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울려퍼질 때 일본의 우리 교포, 교포 2,3세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마 일본땅에 그것도 위령제에서 이렇게 곱고 예쁜 우리노래, 제주어가 흘러나온 것은 처음이리라. 실제로 연주가 시작되면서 마지막에 헌화하는 순간까지 울고 또 울었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다.
처음 아이들을 외국으로 연주 여행으로 떠나보낸 부모님들께도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단순히 외국의 유적지를 방문하고 잘 갖춰진 좋은 연주홀 에서의 연주가 아니다. 이 무겁고 역사적인 행사에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흔쾌히 맡겨주신 것이다. 또한 22여명 단원 중 11여명의 엄마(보호자)가 동행하였다. 한 보호자가 자기 아이와 보호자가 함께 오지 못한 아이 한명을 한 조로 돌봤다. 이동, 숙식, 행사 내내 안전하고 세심하게 내 아이, 다른 사람의 아이 나누지 않고 돌보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든 경비를 자비로 지출하며 아이들 돌보미를 자처하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사고없이 철저히 준비하고 최고의 성과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작은 소동도 없이 행사를 마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사회가 앞으로 기대하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동행한 내내 기쁨과 그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70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제주 4∙3!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이제와서 누가 누구를 탓할것인가? 그러나 그 사실과 역사 모두를 묵과하고 깊이깊이 감춘다 하여 그 사실이 묻힐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들과 우리 모두가 시대의 피해자인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대로 행사 첫 시작부터 맨 마지막까지 3시간 동안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물은 마를 수 없겠지만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제라진의 작은 시작이 그 결의를 다지는 큰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제라진 소년소녀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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