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몇 등급입니까?"...장애등급제 폐지 촉구 위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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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 등급입니까?"...장애등급제 폐지 촉구 위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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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이야기] 백혜진 제주장애인자립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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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혜진 제주장애인자립센터 간사 ⓒ헤드라인제주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

학창시절 가장 많이 들어왔던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을 받을 때면 그때 당시의 성적에 따라 어느 날은 으쓱한 우월감에 도취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자책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 질문은 오랜 시간 필자를 괴롭혀 왔고 종국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의 환멸로까지 이어졌다. 왜 등수가 필요하지? 시험성적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닌데 왜 단지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이지? 

한때 날카로웠던 이러한 의문은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서 멀어질수록 무뎌져갔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골치 아픈 물음을 평생토록 던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등급제라는 제도 아래 놓인 장애인이다.

장애등급제는 15개 장애유형별로 장애(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정도에 따라 1등급부터 6등급까지 판정기준을 정해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 서비스는 이러한 장애판정에 의한 장애유형 및 장애등급에 따라 철저하게 제한과 차등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기준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등급은 1~3급 등록 장애인이며, 교통약자이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은 1~2급으로 한정되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인 만18세 이상의 중증장애인이 기본소득을 보장받고자 할 때도, 장애등급에 따라 장애인연금(1~3급 중복)과 장애수당(3~6급)으로 나누어 신청할 수 있다.

언뜻 보면 합당한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복지서비스를 누리게 해야 낭비되는 세금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장애인이 동일한 서비스 지원을 누릴 경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중증 장애인에게 오히려 적은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물론 있다. 이와 같은 사고가 여태껏 장애등급제의 어두운 면을 가리는 맹점으로 작용해왔다.

나라 안팎 모든 시선이 진도 앞바다로 향해 있던 2014년 4월, 수많은 희생을 목도하며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침잠해 있던 그 때, 안타까운 목숨이 또 하나 스러져갔다는 비보를 접했다. 장애등급제의 희생양이 된 고 송국현 씨(당시 52세)의 죽음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7년을 살던 그는 2013년 10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 중복3급이었던 그는 당시만 해도 1~2급까지만 신청이 가능했던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했다. 활동보조인만 곁에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화마(火魔)는 그의 수개월 동안의 짧았던 자유와 자립생활을 향한 열망, 벅찬 기대로 가득했던 내일을 집어 삼켜버렸다.

비단 한 사람의 죽음뿐이 아니다. 장애등급제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다. 고 송국현 씨와 같이 활동보조인이 필요한데도 장애등급이 4급 이하라 아예 신청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려고 보면 2007년 4월 이전 장애등급을 받아 장애등급심사 요건에 충족되지 않아 재판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재판정을 받게 되는 경우 장애등급이 상당부분 하향조정 되기 때문에 재판정 자체를 꺼리게 됨), 여러 요인(장애등급심사 시 정권의 사회복지정책, 의료기관의 판단 착오, 부정확한 판정 기준 등)으로 인해 실제 장애정도보다 하향된 등급을 받게 된 사람, 그로 인해 여러 복지서비스에서 제외되는 사람 등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같은 잠재적 희생양들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기에 하루 속히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난 이후에 어떤 대안이 등장해야 할까. 성신여대 이승기 교수의 말을 빌려보면 ‘첫째, 혼란만을 야기 시키는 중증/경증의 단순화 과정의 거치지 않은 전면적인 장애등급제의 폐지가 요구되고 둘째, 장애인의 소득보장을 위한 의학적 기준, 직업․근로능력기준, 사회적 환경 여건 등을 고려한 종합판정체계 마련이 필요하고 셋째, 현행 감면․할인제도를 정비하여 장기적으로는 직접소득보장이 가능한 영역을 검토하여 해당 영역부터 감면․할인제도를 폐지하고 직접소득보장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넷째, 장애영역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서비스 욕구 파악에 중점을 둔 인정조사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2015).

2012년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하며 그 이후 정책적 의제로 급부상하게 된 장애등급제. 박근혜 정부에서 2013년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을 만들었고 2017년까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노라 약속했지만, 2017년인 오늘도 장애등급제는 전과 다름없이 시행되고 있으며 여전히 장애계의 핫이슈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에 한하여 오는 24일부터 6개월 간 장애등급제 개편을 위한 3차 시범사업으로 '서비스 제공 기준 개편안'을 선정된 지자체를 대상으로 모의적용하기로 했지만, 이조차도 경증·중증의 단순화일 뿐이고 맞춤형 서비스지원조사표 항목 또한 개인별 욕구를 조사하는 항목 없이 의학적 손상 중심의 기능제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전의 인정조사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이 크다.

"장애인등급제는 국가가 돈을 아끼려는 꼼수이자 인권유린적인 대표적인 제도다. 우리가 한우처럼 등급이 매겨지는 데다,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상황이나 요구가 아닌 단순 등급에 따라 사회서비스를 제공해버리게 된다."

얼마 전 4월 20일(장애인의 날) 제주 벤처마루 앞마당에서 열린 420장애인문화제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김태우 씨의 이야기다. 장애등급이 매겨지는 본인을 정육점에 내걸린 고깃덩이에 비유하면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장애인등록을 할 때, 장애등급 재판정 시기가 도래했을 때, 장애상태의 변화로 장애등급 조정이 필요할 때,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때 매번 장애등급심사라는 심사대 위에 놓이는 그들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이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는, 개인의 서사를 무시하고 집단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열화, 등급화의 동반 희생양인 비장애인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디에선가 등급 매겨지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 몇 등급입니까? <백혜진 제주장애인자립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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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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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너 2017-05-29 14:09:11 | 117.***.***.249
우리아이도 뇌병변 3급에서 4급으로 조정되었습니다 서류만으로 판단? 말이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다리와 한쪽 팔을 사용이 불가하며 뇌병변으로인해 인지능력이나감각 이해력 모든면에서 많이떨어지는데..앞으로의 의료비가 많이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