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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사건' 아버지의 죽음..."어떻게 그날의 일, 잊겠습니까?"

관덕정 '3.1사건' 희생자 유족 첫 증언...그날, 무슨 일이?
12살 소년의 기억, "아버지 기관총 맞아 숨진 그날"

윤철수 기자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승인 2017.03.3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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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3.1사건 희생자 유족인 송영호씨가 31일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에 참가해 첫 증언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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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 ⓒ헤드라인제주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제 나이 열두살 밖에 없된 어린 소년이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날의 일을 잊겠습니까. 잊을래야 절대 잊을 수 없죠."

31일 오후,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 첫번째 증언자로 나선 송영호 할아버지(82)는 1947년 제주시 관덕정 3.1절 행사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증언본풀이마당의 주제는 '70년만에 골암수다(말한다 의미의 제주어) 3.1의 기억 3.1의 현장'.

제주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월1일의 '3.1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70년만에 처음으로 말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당시 제28주년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던 제주시 관덕정에서는 미군정의 발포로 6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초등학생, 갓난아기를 업은 젊은 아주머니, 40대 장년도 있었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의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

송 할아버지는 3.1절 기념대회에서 희생된 송덕윤(이명 송덕수)의 아들이다. 당시 남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이날 관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송 할아버지는 증언 본풀이마당이 시작되자 또렷한 목소리로 당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열두살이던 그 또한 그날 3·1절 기념식에 참가했다.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3월1일 관덕정에서 발포사건이 일어나던 날, 제 아버님은 3.1절 기념대회를 구경하러 간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저는 시가행진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3.1절 기념식에 참가한 학생들은 시가행진을 할 때 머리에 띠를 두르고, 16절지 크기에 태극기를 그려서 막대기에 붙여서 행진을 했지요."

총소리가 들린 것은 시간행진을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학생 대열에서 신나게 시가행진을 하던 중 발포소리를 들었다.

"송덕수 총 맞았다"는 말이 순식간에 퍼졌고, 그는 도립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서 보니, 아버님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고, 수의사였던 12촌 형님도 와 계셨어요. 아버님은 살려달라고 하면서 물을 그렇게 찾더군요. 6.25때도 보니까 총상을 입은 분들이 가장 먼저 물을 찾았던 것처럼....아버님은 총이 팔로 해서 배를 관통한 것 같았습니다. 요즘 의료기술이었다면 살렸을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역부족이었지요."

아버지가 결국 숨을 거두자 도남 청년들이 시신을 옮겨왔고,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의 사과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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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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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3.1사건 희생자 유족인 송영호씨가 31일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에 참가해 첫 증언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진행자인 김은희씨가 그낭 3.1절 행사에 대해 묻자, 송 할아버지는 관덕정 주변의 위치도까지 정확히 설명을 해내며 아버지 사망과 관련한 발포사건에 대해 증언했다.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어 넘어졌는데도, 그냥 가는 것을 학생들과 어른들이 다 본 겁니다. 흥분한 군중들이 '와'하면서 나섰다. 그러니까 (경찰은) 지금 제주 목관아 있는데 경찰서가 있었는데 그곳 망루에 기관총을 배치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포탄이나 공중 (위협)사격 수준이 아니었다. 정확히 조준해서 기관총으로 쏜 것이다. 우리 아버님이 맞은 총은 구구식이 아니고 기관총, 연발로 나가는 거였다."

송 할아버지는 "이때부터 세상이 무서웠다. 세상에 총소리도 안들어보다가 총 맞아서 죽었으니까."라며 끔찍했던 당시의 일을 회고했다. 그의 형님은 4.3사건 당시 행방불명 됐고, 누님은 소개지에서 병에 걸려 숨졌다고 했다. 4.3으로 부친과 형님, 누님을 모두 잃었다.

그때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송 할아버지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나.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그런 일, 기록도 제대로 하고,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3.1사건과 관련해 돌담에서 숨죽이며 발포 사건을 목격한 양유길(82), 3.1사건에 참가했고, 4.3 때 무려 11명의 가족을 잃은 허영회(84)씨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생한 증언을 했다.

양유길씨는 북초등학교 5학년으로 1947년 3·1절 기념식에 참가했다. 전교생이 참가했다. 당시 어렸기 때문에 맨 끝에서 따라가던 중 총소리와 동시에 ‘뛰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박재옥 여인)가 총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4·3으로 두 오빠를 잃었다.

허영회씨는 화북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3·1절 기념식을 보러 북초등학교에 다녀왔다. 당시 학교나 관덕정 마당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 일제 경찰복장의 기마순경을 보았다. 나중에 그 기마순경 때문에 3·1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 4·3사건의 와중에 부모님과 형제자매 등 모두 11명이 희생됐다.

이날 4.3증언본풀이마당 시작 무렵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하고, 제주4.3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 등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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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열린 '열여섯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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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수 기자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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