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28일 오후 2시 제주시 하니호텔 별관 2층 회의실에서 '완전한 4.3해결을 위한 4.3역사증언 및 제주4.3 인천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는 인천형무소에 수형됐던 수형희생자 당사자인 현창용, 박동수, 양근방, 양일화 할아버지들을 비롯해, 4.3유족회 회원 등 200여명이 자리했다.
2부로 나눠 진행된 이날 행사는 1부에서 인천형무소 수용희생자들에 대한 조사결과 보고가 이뤄졌으며, 2부에서는 수형희생자 중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증언에는 현창용, 박동수, 양근방, 양일화 할아버지가 나와 69년 전 겪었던 4.3의 아픔을 증언했다.
당시 제주읍 노형리에 거주하던 현창용 할아버지(당시 16세)는 "한밤 중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구둣발로 걷어차 깨어났다"면서 "영문도 모르고 일어나니까 경찰이 저를 끌고 갔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나 좌익, 이북에 대해 알지도 못하던 현 할아버지는 경찰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고, 밥 해주는 아주머니의 '경찰히 말하는 대로 해야 살 수 있다'는 조언에 경찰의 자백서로 추정되는 종이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현 할아버지는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감옥에서 나오게 됐고, 또 다시 잡혀가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무기징역, 징역 20년으로 점차 감형돼 석방됐다. 석방되던 당시 나이는 42세로, 26년 가까이 감옥을 전전했던 것.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지만, 현 할아버지가 사상범으로 수감생활을 했던 사실로 인해 공직에 나설 수 없었다.
이날 아버지와 형님이 눈 앞에서 총살되고, 영창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박동수 할아버지를 비롯해 한날 한시에 산촌형제들까지 집 마당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양근방 할아버지, 쓰러진 전신주 보수작업에 동원됐다가 잡혀간 조병태 할아버지 등도 나서 당시의 참혹했던 실상을 증언했다.
한편 생존자의 증언에 앞서 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희생자들은 대부분 체포된 뒤 협박과 고문을 받았으며, 제대로 된 재판조차 없이 수형소에 수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64명이 대답한 재판결과 인정 여부에 대해 대부분인 62명이 재판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특히 재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