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4)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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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4)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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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 강윤미 객원필진


아, 깜짝이야...

크지도 않은 전화기 소리에 지레 놀라 나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비비고 있다.

“... 예, 여보세요?”
“언니다. 몇 동 몇 호라고?”
“107동 107호에요...”

며칠 전부터 약속된 외출인데도 아직도 준비가 덜 된 내 심장이 사소한 바람이 지나며 내는 작은 장난질에도 파락, 파락 난리다.

아파트 경비실 앞에 세워진 하얀 승용차의 까만 유리창이 스르릉.... 기척 없이 내려가며 반가운 얼굴이 웃는다.

“.... 되게 멀어요.... 차도 없는데.... 그래도 다니긴 해야 하는데....”
언니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꼬불거리는 길이 왜 이렇게 멀기만 할까? 벌써부터 한숨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늘 말하듯 할 게 없어 공부를 택했던 나는 방학이라는 걸 하자 집에 들어앉아 죽은 듯이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언니의 안부 전화를 받고는 내가 생각해도 생뚱맞게 앞뒤 가리지 않고 다급하게 취직자리를 부탁했다.

“야! 방학하면 언니한테 안부인사도 하고 해야지? 뭐하고 있어?”
“응... 그냥 있어요.... 언니, 나 취직할 데 없을까요?”
“왜? 학교는 어떻게 하고?”
“응. 생활이 안돼서..... 학교 다닌다고 다 써버려서 이젠 생활비도 없어요.... 수급자라도 생활비가 안돼요. 여기저기 손 벌리는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일자리 어디 없을까요?...” 
 
워낙 발이 넓고 아는 인맥이 많은 언니는 작년까지 제주장애인 연맹인 DPI의 여성위원장을 맡다가 새로운 여성장애인 단체 사무실을 맡아 하고 있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 그런 언니에게 무작정 억지를 부려 소개받게 된 일자리의 면접을 보러 가게 된 게 바로 오늘이었다.

집에서 거의 25분 정도 차를 타고 가 내리게 된 곳은 시내면서도 시골집이다.
면접이라는 걸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나는 겁이 발등까지 내려와 꾸물거리며 내 발걸음을 자꾸만 뒤에서 잡아챈다.

“실례합니다.... 뭐하고 있어?”
“어, 언니... 어서 와요...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집에서 묻혀온 두려움이 더덕더덕 묻은 운동화를 벗고 마루로 들어서자 휠체어에 앉은 통통하고 눈웃음이 귀여운 여자가 나를 맞는다.

“낯이 익어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네.... 복지관에서 몇 번 뵀는데....”

아주 가끔 복지관에 가던 때, 몇 번인가 지나는 얼굴로 마주쳤던 얼굴이 아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장애여성운동계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람.

“여기선 일이 정해져 있는 건 없고 알아서 찾아 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혼글이나 엑셀 할 줄 아세요?”

“네. 조금씩 해요.... 엑셀은 아주 기초적인 정도....”
잔뜩 겁이 들어가 자신 없게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열흘은 굶은 병아리 같다.  

“집은 어디세요? 차는 있어요?”

“도련이에요.... 아니요, 차는 없어서... 그게 좀.... 여기가 좀 머네요... 좀 가까이면 전동스쿠터라도 탈 텐데... 너무 멀어서....”

“그러네요.... 취업을 하고 싶어도 교통이 제일 문제에요... 장애인은... 그렇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위로하는 여자의 그 말에 조금은 되도 않을 베짱이라는 게 나오려고 한다. 지금은 뭐든 하지 않으면 어려운 지경이라 무어라도 붙잡고 매달려야 하니....

“네... 제가 버스를 타기가 곤란해요.... 버스를 타려면 전 기어서 오르고 내리고 그래야 해서... 몸에 힘이 없는 근육병이거든요.... 걱정이에요.... 그래서....”

“그러게... 걱정이네.... 혹시 세발 오토바이나 그런 거라도 탈 수 있으면.... 아니면....”

“아!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장애인이동지원 하잖아! 그리고 장애인연합회에서도 해주거든... 그걸 한번 알아보자. 내일 전화해서 한번 알아봐.....”

가만히 곁에 앉아 얘기를 듣던 언니는 손바닥을 치며 자기일 인양 신나서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은 수습기간 삼아 다니고 그 다음 달부터 정식으로 일을 시작해보기로....

내일은 출근을 위한 차편을 알아봐야 한다. 차편이 준비되면 출근을 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물론 차편이 준비되지 못하면 아마, 일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는 일을 워낙 소홀히 했던 터라 일을 하고 싶어도 조건이 안 되기도 하는 나였지만 일자리가 난다고 해도 대중교통이용이 어려운 나는 다른 이에게 번번이 그 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현실이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저소득, 또는 무소득의 중증장애인이 겪고 있는 대부분의 일이다.

우리는 비장애인과 같다고 외치고 그 외침을 수긍하는 대중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비장애인과 다름도 알아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많은 기관에서 장애인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기준은 언제나 비장애인과 같은 조건을 부여한다. 단지 이력서에 장애인신분증을 하나 더 첨부하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이 무엇이 있을 지, 나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중증의 장애인이다. 단 하나의 계단도 오르내릴 수 없는 근육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는 한번에 20m 이상의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없고, 혼자 앉거나 일어설 수 없으며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일반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취업을 알선하고 연구하고 시행하는 기관은 참 다양한 장애의 기준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의 장애유형에 대한 고려나 연구, 혹은 아무런 의문 없이 단지, 실무위주의 기능적인 것만을 요구하게 되는 실적위주의 취업만을 알선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몇 번의 그 기회를 버려야 했다. 그 이유는 내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체적 조건으로 해서 비장애인과는 다른 환경과 근무 조건이 요구되기 때문 이었다. 

내게 취업의 기회라는 것은 마치, 신발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신발을 봤는데 공교롭게도 그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고 뒤에 온 손님의 발에 맞아 내가 그 신발을 살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하고 어이없는 상황처럼 늘 내가 가질 수 없는 그런 기회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가까스로 얻은 이 기회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 사정을 다 까발려내며 사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이 필요하기에 나는 내일 정말 열심히 잘 하지도 못하는 말주변머리로 내 사정을 알리고 어느 정도의 동정도 얻어야 할 테고 이해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 나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 축축해진 여름 비지땀에 젖은 등을 쓸어본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내 사정을 말하면서 이해를 구할 만큼 심장이 두꺼워진 게 말이다. 

오늘 내가 내디딘 지겹도록 느린 한걸음은 제짝을 앞에 두고도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눈먼 달팽이처럼, 나 역시 몇 발자국을 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루한 시간을 버티지 못해 강인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심약한 성품으로 금세 지쳐서 주저앉을 수도 있고, 포기하고 도망을 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이 든 버섯을 삼키고도 죽지 않는 강인함과 목표한 곳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나아가는 달팽이의 인내를 나는 노력해보려고 한다.

칠순의 연세에도 품을 팔아 성치 못한 자식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강건한 심장과 10살도 넘어 걸음마를 시작하는 성치 못한 딸의 등 두드리며 장하다 눈가 붉히던 북돋움이 느린 나의 발걸음에 기운을 더할 것이라 믿기에....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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