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3) 몇 cm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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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3) 몇 cm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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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미 객원필진

“무사 경, 엎드렴시니게.... 가슴 호꼼 세우라.... 늙엉은 바닥에 기잰 허미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항상 팔꿈치를 무릎에 짚고 어깨를 숙이고 앉는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고 그러다 휘적휘적 다가오셔서는 들일로 투박해진 두 손으로 내 등과 가슴을 꽉 마주 짚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 올리시곤 하셨다.

방바닥에 앉을 때면 몸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팔꿈치로 무릎을 괴고 앉으려면 당연하게 내 몸은 방바닥과 닿을 듯, 닿을 듯 휘청거리곤 했다.

몸에 기운이라고는 없는 물먹은 솜덩이처럼 근력 없는 내게 몸을 반듯하게 세워 평범한 모습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싸움.

그런 나와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니 내가 앉아 생활을 하게 되던 그 때부터 줄기차게 싸워야 했었다.
기껏, 해봐야 몇 cm 되지도 않을 그 작은 공간을 만들어 반듯하고 평범한 딸의 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평범한 어머니는 매일을 그렇게 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곤 하셨다.

내 몸의 근육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버티기 위해 팔꿈치로 내 몸을 가까스로 받치고 앉아야 하는 아이의 장애를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소박한 가슴 아픔일 뿐이었던 시절.....

그 시절엔 그렇게 바닥에 절을 하듯 몸을 숙이고 앉아야 하는 이유를 철딱서니 없는 아이도 몰랐고, 그 아이를 키우는 무지한 시골의 아낙인 내 어머니도 알지 못했다.

단지, 벽을 등지고 앉혀 양옆으로 베개를 고여 주면 하루 종일이라도 사람구실 하는 듯이 있던 나를 열어놓은 문 사이로 밭일 나가고 들어오는 눈에 띄어‘숨을 쉬고 있구나...’ 알기 위한 방도였을 뿐인 어미의 버릴 수 없는 생명을 바라보며 가슴앓이 병을 키우며 살아가야 했던 나날....

오늘도 방바닥에 절을 하듯이 여전히 살아가는 딸이 있고 그 딸을 바라보며 심장병에 센 귀밑머리를 하고 한여름 땡볕에 앉아 찝찔한 소금 땀을 눈에 담아가며 뼈마디를 뭉글어 받은 하룻값으로 숨을 연명한다.

시골 무지랭이 어미의 심장병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못한다.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아랏벌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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