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호소..."정부도 기업도 책임지는 곳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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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호소..."정부도 기업도 책임지는 곳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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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째 투병생활 홍덕표씨, "사실상 산업재해"
"숨 못 쉬는 억울함...앉아서 삭힐 수밖에 없어"

충격이었다. 제주에서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 기자는 서귀포시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홍덕표씨(71)를 찾았다.

00아파트 2층,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집에 들어가니 편한 차림의 노신사가 기자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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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홍덕표씨. ⓒ헤드라인제주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현재는 (폐의) 흡입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폐 기능이 3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현관문 밖을 나서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기억으로 가습기를 처음 사용한 것은 2002년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해 1월 코가 계속 막히고, 감기에 자주 걸려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보통처럼 감기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감기약을 먹었다. 2011년 뉴스를 통해 가습기가 폐에 해롭다는 뉴스를 보기 전까지 가습기를 사용했는데, 2004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는 가습기는 폐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거의 24시간 방에 켜놓았다. 어머니도 같이 가습기를 맞았다. 가습기를 트는 게 증세를 악화시키는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그는 시간이 오래된 일을 떠올릴 때에는 기록이 기억을 대신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더욱이 그 기록마저 몇몇 부분이 소실된 상태였다. 당시에는 그것들이 피해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가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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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홍덕표씨. ⓒ헤드라인제주
현재 생활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과 장애인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장애인연금은 폐 질환으로 (장애인)1급 판정을, 어머니는 치매로 3급 판정을 받았다. 집밖을 못나가니 다른 수입은 기대할 수 없다. 호흡보조장치는 다행히 국가에서 지원을 해줘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옛날엔 안 하는 운동 없이 다 좋아했는데 아프고 나서는 문 밖을 나서는 게 불가능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약은 2달에 한번씩 조카가 타다 주고, 밥은 일주일에 2시간씩 집에 오는 치매돌봄이 아줌마가 해 준다"고 말했다.

동네마트는 고사하고 현관문을 시작해서 복도를 거쳐 엘리베이터에 이르는 길이 그에겐 너무나 먼 여정이다. 10평 내외의 집과 인터넷 공간이 홍씨가 사는 세상의 전부다.

그는 나이 60이 넘어서 컴퓨터 쓰는 법을 배웠다. 홍씨는 "살기 위해서 폐에 무슨 약과 음식이 좋은지 찾기 위해서 처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중에 이 증상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란 걸 알게 된 후에는 내가 받은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컴퓨터를 했다"며, 지난 7월 20일 정부 국민신문고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인정 조사의 속행 및 피해자 지원대책 확대를 촉구를 위해 직접 작성한 글을 보여줬다.

이에 대한 정부 담당자의 답변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이 담당자는 조사 속행의 경우 앞에 전차인 3차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피해자 지원대책 확대의 경우 새로운 조사 방법이 도입돼 피해자를 확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홍씨는 네이버 밴드 '가습기살균제 항의행동'를 비롯해 개인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서 자신의 고통을 알리고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일을 직접 꾸준히 해오고 있다.

경남 진주 출신의 홍씨는 20대 초반에 제주로 이주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 꽤 많은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사업이 자리가 잡은 30대쯤부터는 30년간 지역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산소보조장치가 있는 집 한쪽 구석에는 그때 받은 감사패와 표창, 상장들이 수북했다.

"내가 아프기 전에 30년쯤 정방라이온클럽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어, 아마 여섯 군데인가 일곱 군대에서 활동했었어. 정방클럽에서는 회장도 하고 그랬었지. 표창 같은 것도 받았는데, 그런 거는 (기사에)안 써도 돼."

그는 사진 속의 젊은 자신이 달고 있는 훈장들과 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허허' 울음 같은 너털웃음이 홍씨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 증세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냐는 질문 직후였다. 홍덕표씨는 다시 담담히 일을 열었다. "억울했지. 억울하다는 생각 말고 무엇이 떠올라. (증세의 원인인 것을)모르고 사용했으니...어머니도 안 좋아졌으니 더 그렇지".

"나쁜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래도 어머니가 있었기에 버텼다. (어머니는)내 삶의 마지막 버팀목이다. 가끔씩 정신이 돌아 오실 때 힘내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서로에게 버팀목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짐이 되면 안된다며 먹기 싫은 식사도 꼭꼭 하신다". 홍덕표씨의 어머니 김선옥씨는 올해 96세로 홍씨와 같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인정 신청이 진행 중인 상태다. 더욱이 6~7년 전부터 치매가 와서 홍씨가 수발을 들고 있다.

가습기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가습기는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버렸거나 창고에 있는 거 같다. 우리 피해자들 중에 과연 몇이나 그 저주받을 것을 꺼내 놓고 있겠나"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터뷰 내내 가쁜 숨을 몰아쉬던 홍씨가 가장 길게 입을 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참사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흐지부지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로 안타깝지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사회의 이슈가 돼야 하는데...알고 보면 전 국민이 피해자인데...이게 산업재해거든. (이 사태가)총칼 들은 거보다도 더 무서운 집단학살이지. 내가 알기로는 근 십몇 년에 원인도 모르고 나 모양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고, 아픈 사람도 많고 지금 투병 중에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도 많고. 남녀노소 할 것 없지. 우리 어머니도 그렇고. 같은 집에서 같은 방에서 살았으니까. 자연적으로 가습기 피해자가 됐지".

그는 "내가 알기로는 이 가습기살균제가 사람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나온 것은 한 5~6년 전에 나온 걸로 안다. 그것도 뉴스보고 내가 알았지. 근데 정부에서, 지나간 정부도 나 몰라라, 대기업이든 제조회사든, 판매회사든 나 몰라라..."라며 "그래도 이 정부 들어서 국회의원들이 조사도 벌이고 시민단체들도 나서면서 5년 만에 불이 붙었는데 이렇게(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묻히는 거 같아서) 돼서 안타깝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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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홍덕표씨. ⓒ헤드라인제주
한편, 그는 이번 4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기간이 시작된 직후인 4월 말경 피해 신청을 했다. 신청 직후 아직까지 답변이 없어 공식적으로는 '피해자'임을 인정받지 못한 피해 신고자인 상태다.

제주에는 지난 16일 기준 27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 피해등급이 매겨지지 않은 ‘잠재적’ 피해자는 26명이다. 단 1명만이 피해자로서 공식 인정을 받은 상태이나, 이마저도 3단계가 적용돼 치료비 및 간병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는 직접 정부 공식 피해접수기관인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연락해 조사 진행상황을 물었고, 그 결과로 자신이 4차 피해조사 신청자 중에서 신고가 빨랐던 편이라 이달 안으로 홍씨와 가습기 간 인과관계에 관한 역학조사 결과를 병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홍씨는 이번 겨울 혹시라도 감기의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감기에 걸리면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도 3번이나 감기로 인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이 됐다고 한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는 "먹을 것. 그리고 생활용품"이라고 답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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