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제주4.3' 왜곡...공권력 책임 쏙 빼고, 진실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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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제주4.3' 왜곡...공권력 책임 쏙 빼고, 진실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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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역사교과서, '제주4.3' 역사적 기술 "축소.왜곡"
4.3 발발원인 '왜곡'...국가공권력 책임은 언급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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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8일 공개한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제주4.3사건'에 대해 축소 기술하는 한편, 발발원인 및 책임 등에 있어 역사적 사실이 왜곡 기술된 것으로 나타나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정 역사교과서인 중학교 '역사 ①, ②'와 고등학교 '한국사'의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해 개발했다"고 밝혔으나, 제주4.3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경우 축소.왜곡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경우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사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4.3에 관해서는 중학교 역사 '하'편 129쪽에 "1948년 5월10일 38선 이남에서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유엔 감독 하에 실시되었다. 제주4.3사건이 발생한 제주도 일부지역에서는 선거가 무산되기도 하였으나 전국적으로 9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라고 기술했다.

4.3에 대한 독립적 문장은 전혀 언급함이 없이, 이 본문 내용 중 '제주4.3사건'이라는 부분에서 각주 처리를 통한 방식으로, 주석을 통해 4.3 내용을 짤막하게 제시했다.

주석에서는 "제주도에서는 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데 이어서, 1948년 4월3일에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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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제주4.3' 기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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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제주4.3'에 관한 각주. ⓒ헤드라인제주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많이 희생'이라는 부분은 적시되었으나, 전체적 문맥 속에서는 '남로당의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는 설명에서 막바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도민 희생이라는 설명으로 넘어감으로써, 마치 제주4.3을 '좌익 폭동'에 의한 것으로 규정짓게끔 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250쪽에 실린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이란 작은 타이틀과 함께,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제주4.3사건). 이로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라고 기술했다.

'제주4.3사건'이라는 부분에서는 "2000년 국회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공포하였다."고 주석 글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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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역사교과서 '제주4.3' 기술 부분. ⓒ헤드라인제주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 '1947년 3.1절 기념대회의 경찰 발포'와 '1948년 4월3일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인 것처럼 나열형으로 기술하고 있는 점이나, '남로당 무장봉기'가 일어남으로써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발생했다고 기술하는 것은 그 책임을 '남로당 무장봉기'에 전적으로 떠넘기는 행태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행 제주4.3특별법 제2조의 '제주4.3사건' 정의에서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돼 있다.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 부분은 역사교과서의 기술내용과 동일하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문장 전개법은 큰 차이가 있다. 

기술 내용을 보면, 국정교과서는 '남로당 무장봉기'가 제주4.3의 발발원인이고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도 전적으로 '남로당'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4.3특별법에서는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1954년 9월21일까지 이어진 일련의 기간을 연속적으로 하며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양민 희생을 언급하고 있다. 

즉, 4.3특별법 내용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부분이 크게 암시돼 있는 반면, 국정교과서에는 '남로당 무장봉기'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 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당한데 대하여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이번 국정교과서에서는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기술을 축소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공권력' 책임 부분은 쏙 빼면서 역사적 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4.3에 대한 내용이 지나치게 축소돼 있다.

기존 검정교과서 8종 중 7종에서 4.3사건과 관련한 당시 사진이나 위령탑, 조형물 등이 첨부된 것과는 달리 이번 국정교과서에서는 사진도 첨부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교과서에 제주 4·3 사건이 기술된 페이지는 '정부수립 국민 국민 축하식' 및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선서 모습'만 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검정교과서 8종 중 5종에서는 별도 박스를 통해 발발과정, 역사적 의미, 진상규명 노력 등에 대한 상세한 참고자료를 첨부해 설명했으나, 이번 국정교과서에서는 이의 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의 가시적 성과로 제주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제주4.3추념식이 열리고 있으나, 이 부분도 내용에서 전면 제외됐다.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문가.선생님들과 함께 논의해서 공식 입장을 낼 것이나, 발발 원인 없이 남로당에 의한 무장봉기로 서술한 것은 너무 단순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건 전국적 상황으로서 4.3에 대해 인식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영훈 국회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도 국정교과서의 역사 왜곡.축소 문제를 지적하며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했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내용은 '올바른 역사교과서'(http://historytextbook.moe.go.kr)를 통해 'e-Book' 형태로 공개되고 있다.  

이 내용은 12월23일까지 공개되며, 편찬책임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은 의견을 접수받은 후 반영여부를 최종 결정한 후 내년 1월말 최종본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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