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비장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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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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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이야기] 한정선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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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선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간사 ⓒ헤드라인제주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처음 그가 유명해진 것은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삶을 일궈왔는지 알려지면서이다.

그의 눈물겨운 장애 극복기는 사람들이 신금을 울리고 타의 모범으로 추앙받으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소영웅주의와 접목되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열망과 자극으로 작용했고 대중은 그를 칭송하고 숭배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난 9월 14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혼 사실을 밝히자 그는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가 다섯 사람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은 숭배하던 사람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서 여러 SNS 등을 통해 ‘하체불만족’ 류의 조롱 글들로 이어지는 등 맹비난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의 사생활에서 빚어진 도덕적 결함을 두둔할 수는 없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조롱 안에는, 팔다리도 없는 신체장애인 주제에 유명세 좀 타더니 건방지게 바람도 피는구나 하는 멸시와 증오의 감정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멸시받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노오오력으로 무장된 그의 인생은 한동안 숭배 받아왔고 이제 다시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그의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비단 그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데에, 단순히 한 개인 장애인에 대한 일회적 시선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반복된 시선이라는 점에서 여성혐오와 유사한 어떤 지점을 만나게 된다.

여성혐오(女性嫌惡, misogyny)란 여성을 개개인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대상화를 통해 드러내는 숭배와 멸시를 의미하는데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에서 개인의 감정적 대응과 구별된다. 현재 세계적인 물결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은 이러한 대상화를 거부하고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재하기를 선언하는 행위로 읽을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하게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장애인 관련 영상들의 대다수는 고통의 현실을 초인적으로 극복한 장애인의 감동드라마이거나 장애인의 언행을 흉내 내어 그들을 조롱과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장애인을 대하는 이 이분법적 태도는 견고하게 구조화 되어있는 숭배와 멸시의 정서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 유포하며 소비함으로써 그 구조적 모순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다름 아닌 ‘장애인혐오’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장애인혐오가 기저에 깔려있는 이 사회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만들어가는 각종 법률과 제도, 현장들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베푸는 관대함에 기댄 것으로 봐야하는 것일까? 즉 비장애인은 모름지기 장애인을 배려해야 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양보해야 하고 헌신해야하는 것인가?

가족과 친분 혹은 직업으로 인해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개인의 배려와 양보와 헌신을 담보로 흘러가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우리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인가? 만약 거주하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지진이 발생할 당시에 몸을 가누기 힘든 여러 장애인들이 홀로 있을 때, 그들이 재앙에 희생된다면 그건 그저 가련한 장애인의 개인적 불행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는 의문에 대한 답은, 이 사회가 철저히 ‘비장애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 구조적 모순에 있다는 것에 있었다. 비장애 성인 남성이 사회 시스템의 기준이 되니 거기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은 소위 ‘장애’가 된다. 예를 들어 문턱이 없는 방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관계없이 모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때 장애의 유무는 문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굳이 문턱을 내어서 그곳을 건너기가 불편해지고 어려워지는 ‘장애의 공간 혹은 순간’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 기준이 비장애 성인 남성에서 벗어난다면 장애를 지닌 이들도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켜나간다면, 장애를 지녔든 지니지 않았든 누군가 개인의 희생 없이도 평등하고 편리할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아가 어쩌면 사회를 만들어낸 구조의 기준이 달랐다면 하지도 않았을지 모르는 주장들을 폐기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2층 이상의 건물에 엘리베이터 설치, 계단이 있는 공간에 함께 있는 경사로, 저상버스의 운행 등 장애인 이동권을 대하는 태도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게 ‘베푸는 혜택이거나 배려’라는 시혜적 사고로 소급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다는 그 평등한 입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 행사일 뿐, 이처럼 오만한 시혜적 태도가 설 입장이 못 된다. 따라서 우리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나아가 기존의 비장애 성인남성 중심의 프레임 자체를 해체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누려야 할,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 권리를 되찾아오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를 지닌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 받는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사회구조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곳에서 어떻게 인권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어떻게 혜택이나 배려가 될 수 있는가. 그건 그냥 당연한 권리일 뿐이다.

장애인인권포럼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그동안 거의 만난 적 없었던 여러 장애인들을 마주하며 내 삶 속에서 체화된 것들은 오히려 단순하다.

그들은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퉁 쳐질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다 다르며, 모두가 다 다른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영웅과 낙오자의 서사로만 존재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각각의 개인적 삶의 서사가 있고 각각의 개인적 맥락이 있고 그 속에서 노력하고 게으름피우고 화내고 웃고 행복하고 불행하며 살아가며 살아내는 그냥 그런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사람’이,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장애를 지닌 채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가 일반인일 뿐이고, 모두가 정상인일 뿐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녀야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을 삶으로 알아가는 과정 중에 나는 있다. 따라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권법 강의에서 모 대학 교수가 발언한 장애인과 일반인의 구분은 틀린 것이라 단언한다.

장애인을 대상화하여 숭배하거나 멸시하는 사고의 기저를 지워내고 개개인의 인격체로 서로 존중하며 장애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기준을 변화시킬 때, 그래서 우리가 다른 시선으로 세상보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음세대로의 지속가능한 삶이 추구될 수 있지 않을까.

낡고 차별적이며 폭력적인 패러다임의 변혁은 실생활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장애인혐오를 멈추는 것으로 서로 작용하고 작용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정선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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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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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나 2021-07-23 01:57:36 | 222.***.***.186
필력이 너무ㅠ 좋으세요. 모든기사 너무 잘봤어요!~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