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키 어디 있는거야?"...사라진 열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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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키 어디 있는거야?"...사라진 열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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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 벽시계 높이의 열쇠
2년간 그 자리 열쇠, 갑자기 위치가 바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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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장애인문화예술센터 김도연 간사 ⓒ헤드라인제주
2016년 8월, 폭염에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계속되던 어느 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 후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라 반갑게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각자의 생활과 직업 이야기가 자연스레 화제가 되었다. 나는 장애인문화예술센터에서 일하며 아직 입사한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내 역할을 하나하나 익혀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반색하며 그리고 자녀를 셋 둔, 열심히 생업을 하며 봉사와 활동도 발 벗고 잘해내는, 어떤 멋진, 두 명의 선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친구는 ○○회라는 봉사단체에서 활동 중이라 했다. 그 봉사회 단체 회원 중에는 키 작은 어른, 저신장 장애인(왜소증) 선배가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로 사무실을 열면서 사무실 관련 열쇠들을 한 곳에 모아 두었지. 벽시계가 있는 바로 옆에, 그 위치에……. 사람 키보다 벽시계는 늘 높은 곳을 차지하곤 해. 그런데 그곳에 사무실 관련 열쇠들과 공용화장실 열쇠가 함께 있던 거야.”

아무도 그 열쇠들의 위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로 인해 힘들었을 그 선배마저도. 2년 가까이나 열쇠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올해 초여름, 또 다른 선배가 목소리를 높이기 전까지 말이다.

어느 날 후배기수 한 사람이 화장실 키가 제자리에 없다며 수선을 떨었다. 그간 같은 단체의 회원들은 늘 그랬듯이 벽시계 옆 제자리에 열쇠 자리를 지정해 두었고 별 탈 없이 지내오던 터였다. 사라진 열쇠를 찾느라 사무실 전체가 어수선해진 것이다. 그때 한 선배가 조용히 그 열쇠가 자리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고 했다. 아직은 제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했는지 엉성하게 집게로 자리만 잡아 둔 채 벽에 걸려 있는 열쇠. 그 열쇠는 어린 아이 키 높이만큼 정도도 안 되는 위치에 떠-억-하니 걸려 있었다고 한다. 다들 열쇠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왜 그곳에 있는지 놀라는 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그 선배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고 한다.

“오래도록 지켜봤는데 우리 회원 중에 ○기 ○○○ 회원을 배려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도 우리가 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선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고 한다.

“○○○ 회원은 그래도 지금까지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우리 회 활동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서 봉사하고 교육도 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회원의 모습을 보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도 한 번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친구는 말했다. 키 작은 그 선배를 보면 늘 존경스러웠는데, 그리고 부끄러운 적 참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사실 작은 배려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주변의 가까이에 있는 키 작은 선배를 위해 열쇠의 위치를 낮추는 일, 그런 작지만 중요한 일 하나마저도 배려해 본 적이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부끄러웠다고 했다. 장애로 인해 키가 작은 회원에게는 열쇠를 낮은 곳에 보관해 두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면서 나에게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노력들인지 덧붙여 말했다. 엄지손가락까지 척 들어 올리며 말이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자꾸만 나태해지고 의욕도 없던 터에 만난 친구는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는……. 그리고 장애인의 인권은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 되어야한다는 걸 다시금 되새겨본다. <제주장애인문화예술센터 김도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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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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