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제주생활 2년 정착이주민, "'공무원 친구'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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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제주생활 2년 정착이주민, "'공무원 친구'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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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家' 한미라씨, 제주정착 2년 이야기
시작부터 난관...그 속에서 만난 '공무원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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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家' 한미라씨.ⓒ헤드라인제주
'나는 공무원의 친구이다'2014년 가을, 제주로 이사를 왔다. 남편의 은퇴 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좋을지를 오랫동안 이야기해 오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제주 땅 구입 후, 곧바로 집짓기를 시작하였다. 집터를 처음 파기로 한 3일 전에, 갑자기 친정 엄마가 쓰러지셨고 병세가 길어질 듯 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먼저 제주에 와서 사시던 친정 엄마가 병원에 의식불명으로 입원해 계시게 되자 하나밖에 없는 딸인 내가 얼른 제주에 내려와야만 했다. 준공검사필도 끝나기 전이었지만, 우선 급히 짐을 꾸려서 준공미필인 집으로 들어와서는 엄마 병구완을 해야만 했다. 내려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준공검사를 하기 위해 애월읍 담당자가 집을 찾아왔다.

건축기준을 엄격히 지키며 건축을 했기에 준공검사가 순조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담당자의 한 마디에 나는 얼어 버리고 말았다.

"준공검사 필하기전에 입주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예, 알고는 있는데,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사정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담당자는 매우 냉정한 표정으로 “누가 입주하라고 승인했나요?”

그 일 이후로, 인간의 도리마저 규칙 앞에서는 절대로 허용이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인륜 따위는 없어, 업무와 규칙이 최우선이라구!’ 라고 말하는 듯한 공무원이 무서웠다. 게다가 하필 우리 집 돌담을 쌓아주는 업체 사장이 자기가 지은 책이라면서 건네준 책이 “나는 공무원의 노예였다”라는 책이었다. 그는 그 책을 통해서 개인이 공무원의 권력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는지를 알리고 싶어 했다.

그 책 내용 전부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낯선 제주에서 어떻게 부딪치고 살아가야하나... 한숨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로운 형식으로 살아가고 부딪쳐야하는데, 이곳의 길잡이가 되어 줄 기관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운 존재라니...

시작부터 먹구름인가 싶어서 제주의 맑은 하늘빛을 보고 고슬한 흙을 만지지만 그것을 좋다고 느끼기 전에 얕은 한숨부터 내쉬게 되었다.

제주 생활의 첫 삽은 농사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을 했다. 큰 땅은 아니었지만 내 노동력으로 무언가를 생산해 내고 싶었다. 마침 집 가까이에 제주농업기술센터가 있었다. 채소작물재배 교육 신청을 하였다. 교육 첫 날, 교육장에서 교육을 주관하는 직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직원들과 친해지세요. 가능하면 많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과연, 저 말이 진심일까? 공무원과 어떻게 친해진단 말인가? 저들은 규칙과 관습으로 자신들의 성역을 지키려 할 뿐일 거야. 말만 번드르할지도 몰라...'

공무원들에 대한 첫인상이 두려움이었던 나는, 사람은 안 보고 땅만을 보면서 교육시간 60시간을 채워 나갔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땅도 좋아졌고 사람도 좋아졌다. 책상 위 전문가가 아닌 현장의 전문가인 교육강사들의 현실적인 교육이 있었다.

농사일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주었다. 내가 정말 몰라서 하는 질문들에 대해서 몇 번이고 대답해 주고 보여주었다. 답답해하지도 않았고,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대답해주고 알려 주면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것은 조용한 친절이었다.

고추밭 터널, 옥수수 잡초 억제제, 단호박 모종 심기와 관리, 수확에 관한 것들을 배운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러자 돌 밖에 없어서 한숨만 쉴 수밖에 없었던 우리 밭에 단호박, 고추 옥수수가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농업기술센터에서 약간의 신뢰를 갖게 되자 필요에 의해서 바로 옆에 위치한 농기계교육장을 찾게 되었다. 포클레인 및 각종 농기계교육장을 조심스럽게 찾은 나는, 너무나 생소한 기계들 앞에서 말까지 버벅거렸다. 내가 과연 이런 덩치 큰 기계들을 다룰 수 있으려나...

처음 농기계교육장을 찾아서 "제가 과연 이 큰 기계들을 다룰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진동협 지도사님이 "얼마든지, 교육이 끝나면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내가 혼자서 포클레인을 트럭에 실을 수 있게 되었고 밭두둑을 낼 수 있게도 되었다.

한차례 교육이 끝났지만, 자신이 없어서 농기계교육을 재교육 받겠다고 하니까, 그것을 허용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차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준 것이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혹시 내가 재교육을 받으므로 해서 다른 분의 교육 기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웠는데, 수강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처리해 주는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었다. 담당자가 큰 틀 아래서 융통성있게 처리해 준 것이 고마웠다.

기계를 만지는 분들인 지라서 투박하고 무뚝뚝할 줄 알았는데, 수강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감을 갖도록 해서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벗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더구나 고마운 것은 인력으로 힘든 농사일을 기계대여사업을 통해서 수고를 덜어 주는 부분이었다.

특히 나처럼 여자농업인에게 절실한 기계화 작업임을 강조하며 생소한 부분들을 반복해서 알려주는 친절함에 기운이 솟았다. 남편은 못 다루는 기계들을 내가 척척 다루어내게 되자 남편은 동영상을 찍어서 자기 지인들에게 모두 보내며 자랑스러워하기 까지 했다.

처음 포클레인을 빌려서 반납을 하는 날, 내가 세척후 반납사항을 잘 모르고는 그대로 반납하였다. 반납장소에서 그 사실을 알고 어쩔 줄 모르자 담당자들이 나를 책망하지 않고 ‘괜찮다, 우리들이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더욱 더 미안했었다.

군림하지 않고 받아주는 그 자세가 무척 고마웠다. 하루는 그들 가운데 한 직원이 내게 문득 ‘누님’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나는 그게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제 나도 촌사람, 제주사람이 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공무원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나의 제주 생활은 이제 더 이상 먹구름이 아니었다.

제주에 살아 보니 제주 날씨가 의외로 비가 많고 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살이 하는 내게 제주는 ‘늘 화창’하다고 느끼게 하는 계기가 생겼다. 결국 친정어머니가 멀리 떠나시고 친정아버지만 남게 되자,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해지셨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우울감과 성격이상 증세가 나타나셨다.

세상의 빛이셨던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내게도 큰 상실감이 되었다. 그 날도 아버지와 의미 없는 신경전을 치루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중 우연히 마을길 중간에 작고 하얀 ‘상가리 보건지소’라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와의 지루한 시간을 죽이고자 보건지소 문을 열고 들어갔고, 거기서 우리는 부녀의 관계회복을 되찾게 되었다.

상가리보건지소장과의 첫 만남은 번개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작은 보건지소 안이 마을 사랑방처럼 북적이는 가운데, 물리치료 오신 분들과 크고 유쾌한 웃음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녀. 예상과 다른 활달하고 다정한 그녀가 우리 부녀를 바로 반겨 주었다.

약간의 경상도 억양으로 보아 ‘아, 보건지소장님도 제주 원주민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아버지와도 이야기가 통할 수 있겠구나’ 라는 친근감이 먼저 들었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능수능란하게 펼쳤다.

보건지소장님과 대화를 하시던 아버지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얼굴까지 발갛게 상기되어 내가 존경하던 예전의 그 모습,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후로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건강 체크는 물론이지만, 내게 치매환자 가족이 가져야 하는 여러 생활 자세와 마음가짐 등에 대한 전문 조언을 해 주었다. 그 뿐 아니라 마을길 걷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건강을 지키게 했고 낯설었던 지역민들과의 관계형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보건지소를 이웃집처럼 드나들게 되니까 도시에 살 때 약간은 무시하던 마음이 있었던 공중보건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대형병원의 결코 가까울 수 없는 ‘5분 닥터’들보다 더 훌륭한 ‘가정의학과’, 혹은 ‘나의 주치의를 갖게 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알고 내 배경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더 깊이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마을보건지소를 찾는 분들 모두가 갖는 믿음 같았다. 상가리보건지소장님은 마을회관에서 건강체조 교실을 열었고, 내가 자원활동을 지원하자 바로 마을 어르신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해서 외출을 못하시는 어른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로 연결하였다.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여 보려는 생각에 내가 마을 음악회를 계획하자, 그녀는 지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 활동으로 연계하여 마을음악회 지원도 서슴없이 행하였다. 그녀는 내가 자주 작은 문제들로 번민할 때마다, 나를 북돋아 주며 '무엇을 도와줄까요?'를 몇 번이고 물었다.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냐고 묻자, "그건, 쉬워요. 저는 주민을 위해 일을 하는 공무원이면서, 언니와 '친구'니까요."라는 현답을 했다. 나는 비로소 농업기술센터에서 처음 들었던 ‘공무원과 친하게 지내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공무원과 친구이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어졌다. <한미라 /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유쾌한 家'의 한미라씨는?

한미라씨(54)는 인천 출신으로 2014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로 이사를 온 정착 이주민이다. 제주생활 2년차인 그녀는 새로운 제주 보금자리에 '유쾌한 家'라는 이름의 어린이 도서관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한양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했으며, 현재 그 재능을 살려 어린이들에게 중국어 그림책 읽어주기를 하고 있다. 마을 문화공간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재능기부팀 초청 공연도 자주 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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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열린 '공직자에게 바라는 이야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한미라씨. 강문상 전공노 제주본부장(오른쪽)과 윤철수 헤드라인제주 대표이사가 한씨를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위의 글 '나는 공무원의 친구이다'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본부장 강문상)가 <헤드라인제주>와 공동으로 진행한 '공직자에게 바라는 이야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작품으로 선정된 애피소드 형식의 글이다.

한미라씨는 20일 오전 제주시내 음식점에서 마련된 공모전 시상식에서 자신이 만났던 공무원들의 친절에 대해 칭찬하면서, "아직도 제주 생활이 낯설지만, 마을에서 지역민들과 문화예술을 공유하고, 또한 중국 그림책 읽어주기를 통해 많은 소통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헤드라인제주>

<홍창빈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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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 2016-06-22 01:02:06 | 223.***.***.98
누구나 가까이 함에 거부할사람은 없겠지요.
긍정에사고로 다가섬에 환한 웃음입니다

기분좋은 글 2016-06-21 09:38:59 | 175.***.***.53
진솔하고 감동적인 글입니다. 농업기술센터 보건소ㅡ공직자 같은 분들 만난건 정말 행운이네요
아무쪼록 제주 정착 잘 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