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립 가로막는 사회..."저 혼자서는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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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립 가로막는 사회..."저 혼자서는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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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 청각장애인의 눈으로 본 세상
"청각장애인에 ARS인증 요구...렌터카도 동행자 꼭 필요?"

미루어 짐작 가능할까? 청각장애인이었기에 겪어야하는 삶의 궤적은 내 노력과 무관하게 무섭고 힘든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N포 세대라는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에 덧붙여 장애라는 이유가 가산된 사회의 냉대는 취업의 벽을 너무도 높여 그로 인한 방황도 많이 했었다.

현재 재직 중인 '서귀포시 장애인 보조기구 대여센터'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조차도 사무실 업무는 전화업무가 불가능하면 일을 못 할 거라고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곳은 청각장애인의 입장도 배려해서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가령 지문자(손가락으로 문자를 표현하는 방법)도 배워서 대화가 힘든 상황일 때는 지문자로 통역을 해주는 등 이렇게 배려해주는 직원들이 있기에 힘이 나고 자신감도 생겨 업무에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에도 정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단 한순간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 살 무렵에 심한 열병을 앓았다. 몸이 회복되고 며칠 후, 병원 검사를 받은 결과는 심한 중이염으로 인한 청력 손상이었다. 이후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청력을 되찾게 하기 위해 가세가 기울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에 있는 병원을 계속 다니며 백방으로 힘썼지만 결국 나는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인공와우이식수술(달팽이관을 와우라고 하는데, 질환으로 양측 귀에 고도의 감각신경성 난청이 발생한 환자가 보청기를 착용하여도 청력에 도움이 안 될 때, 인공와우를 달팽이관에 이식하는 수술이다.)이 발전되어서 수술을 통해 회복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손쓸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선천성장애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정작 나는 힘든 점들이 너무도 많았다.

일례로 청각장애인의 언어가 되어주는 필수의사소통수단인 수화를 배운 시기가 고3 수능이 끝난 후였으니 성장과정과 학창시절에 겪었던 삶의 고충은 말로 이루다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겹고 힘들고 답답하다.

사실 나 역시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스스로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본 적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고서야 내 이상한 발음과 말투를 조롱하는 아이들로부터 귀머거리·벙어리라 불리고 왕따를 당하면서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프게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업성취도마저 낮았는데 들리지 않으니 수업을 받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글을 쓰고 책 읽는 방법을 모르니 공부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서, 학교에 가기 싫어서 울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런 나의 상황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억지로 학교에 데려가는 데만 애를 썼다. 나는 정말 이 모든 고통이 부모님의 탓인 것만 같아 원망도 많이 했었다.

타인이 주는 상처로 인해 앓기만 하던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낮은 학습 능력과 성적이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 읽는 법과 글 쓰는 법,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내용 파악이 힘들었지만 입모양을 보려고 노력했고 판서한 내용을 책과 번갈아가며 살펴 공부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편이지만 적극성을 띠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엔 부기, 회계, 컴퓨터 관련 교과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적성에도 맞아 대학도 세무회계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학 강의도 내게는 너무 답답하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주변의 배려와 스스로의 끈질긴 노력으로 당당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사회에 한발자국씩 내딛게 되었다. 이제는 좀 더 나아가 독립생활을 하고 싶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쉽지만은 않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금융관련 업무를 볼 때도 허다하다. 인터넷으로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결제할 때, 본인 문자인증번호가 아닌 ARS 전화로 확인하고 나서 인증번호를 적어야 하는 절차를 거칠 경우가 있는데 나처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은 혼자서는 결제조차 불가능해지는 시스템이다.

다양한 금융사기로 인해서 개인보호법이 강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전무한 것은 아쉽다. 대안으로 ARS전화 대신 기존의 문자인증번호로 확인하는 방법을 선택하도록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신용카드 관련 문의의 경우, 지인과 같이 전화통화를 하는데도 본인이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직접 방문해야 업무가 가능하다고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디 카드회사에서도 장애인 고객을 위해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했으면 좋겠다.

둘째 교통 시설 이용에서의 어려움이다. 얼마 전에는 렌터카를 빌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비장애인 동행 시에만 렌터카를 빌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이 면허증도 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경영방침을 유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관행이 지속된다면 제주에서 청각장애인들끼리만 렌터카를 빌려 자유롭게 여행하는 건 불가능한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시외버스 교통을 이용할 경우, 목적지를 말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부분 필담으로 진행하게 된다.

청각장애인들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서라도 목적지 설정을 대화가 아닌 버튼 조작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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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선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 ⓒ헤드라인제주
작년 마지막 날,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됐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기쁘고 들뜬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수화가 언어로서 한국어와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고 수화 발전과 확산을 위한 노력들이 더욱 확대될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감에 부푼다.

현재 우리 사회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장애인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반증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독립하게 되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다시 설레는 요즘이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청각장애인(농인)과 비장애인(청인)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는 날까지 나 역시 열심히 활동할 계획이다.<김명선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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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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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름 2021-06-21 16:23:11 | 218.***.***.187
혼자서자립이너무나도하고싶은데요ᆢ
우리장애인들은취직을할수있는길은없나요

김아름 2021-06-21 16:20:29 | 218.***.***.187
취업에관한자격증을취득하고싶은데요
장애인들은자격증을따두어도취직을할수
없다라는게너무나도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