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바라기' 된 아이들, 동화 읽는 교사에 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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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라기' 된 아이들, 동화 읽는 교사에 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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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동화읽는교사모임 함덕초 안진영 교사
10년째 아동문학 테마수업..."제겐 아이들이 곧 스승"

"새로 들어온 아티스트 있어요? (403호에 있습니다.) 403동을 찾았다. (딩동, 누구세요?) 아무래도 여자인가 보다. 당신은 무슨 아티스트인가요? (저는 긴 책을 읽는 아티스트입니다.)"

"난 원래 250쪽이 넘는 책을 집중해서 잘 못 읽는데 오늘은 집중이 잘 되고 정말 재밌었다. (중략) 오늘 나에게 새로운 아티스트가 찾아 온 것 같다"

함덕초등학교 4학년 3반 김지유 양의 오늘의 일기 중 한 대목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 속에서 독서하는 법을 배우며 저마다의 상상력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 아이들 뒤에는 한 '동화 읽는 교사'가 있다. 동화책과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가도 전문서적을 헤집으며 아동문학 테마수업 개발에 여념 없는 안진영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열일곱 사춘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남들 보다는 뒤늦게 교편을 잡았다. 그만큼 열정도 컸다. 초임 시절만 해도 그는 소위 '잘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안 교사의 수업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지난 12일 안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함덕초 4학년 3반 교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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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영 교사(오른쪽). ⓒ오미란 기자
◆ 학업 중단, 그리고 7년..."책 읽지 못한 아쉬움 커"

"제겐 학창시절이 없어요. 17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24살이 돼서야 대학에 들어갔거든요. 그 7년 동안 책 읽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커요. 교육에는 정말 창의적인 콘텐츠가 필요하거든요"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만 했던 안 교사는 일지감치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이불집에서부터 과자 공장, 부동산, 서점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공부의 끈은 놓지 않았다. 아련한 어린 시절이지만 교사를 꿈꿔 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3살에는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전문대의 높은 학비를 감당치 못해 이듬해에는 다시 제주교육대학교로 다시 입학했다.

남들 보다 뒤늦게 시작한 교직생활이었던 만큼 열정도 남달랐다. 인터뷰 내내 수줍어 보이던 그가 "졸업 후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교과서를 가르쳤다. 스스로를 '잘 가르치는 교사'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곧 "오만한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건 교육방법 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던 그였다. 수업이 재미있으려면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콘텐츠를 만드려면 많은 자양분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학창시절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곧바로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 전화했더랬다. 무턱대고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어요"라고 말이다.

그곳에서 만난 건 '제주동화읽는어른모임'. 동화책과 그림책을 바탕으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던 동아리였다. 이의 참여를 시작으로 안 교사는 아동문학에 눈을 뜨게 됐다.

이후 동화책과 그림책을 들여다 보고 관련 전문서적까지 탐독해 수업에 적용할 테마수업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됐다. 그는 "그저 무조건으로 재밌었다. 책에는 장르별로 오솔길이 참 많은데, 마음만 먹으면 그 오솔길을 다 가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미소지을 뿐이었다.

이어 안 교사는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제주교사지회와 동화읽는교사모임 구성을 주도하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교육과인 춘천교대 교육대학원 아동문학과에서 공부하는 등 전문가적 소양을 갖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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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영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함덕초 4학년 3반 교실 뒤에 '독립적인 스스로 읽기' 규칙을 적은 그림이 붙여져 있다.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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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영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함덕초 4학년 3반 교실에는 아이들의 직접 지은 동시 작품들로 가득하다. ⓒ오미란 기자
◆ 10년째 아동문학 테마수업..."제겐 아이들이 곧 스승"

"독서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이 책을 읽는 몸이 되는 겁니다. 평생 독자가 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수업 시간 보다 수업 내용의 가지를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아동문학을 접한 뒤 안 교사의 수업은 180도 달라졌다. 종전 수업의 목표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수업은 아이들이 '책 읽는 몸'이 되는, '평생 독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올해로 10년째다.

안 교사의 수업은 하나의 동화.그림책 테마를 중심으로 책 읽기, 글 쓰기, 먹거리, 마음 공부, 시, 노래 등 단계별로 진행된다. 이를 토대로 책 읽기, 일기 쓰기 등이 매일 숙제로 나간다.

수업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쉬는 시간을 포함해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습관화 교육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그의 소신이 십분 반영됐다.

아이들도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스스로 책을 골랐다는 자부심과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쁨, 책을 집중해서 읽었다는 뿌듯함까지 느끼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면 그 변화상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그럴 수록 안 교사는 더욱 더 스스로를 내려 놓았다. 그는 "예전에는 교사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며 "아이들이 서로 함께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교사인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저와 헤어지고 나서 더이상 책을 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며 "큰 욕심은 없고, 그동안 씨앗을 많이 뿌렸으니 언젠가 필요할 때 꺼내서 글도 쓰고 책도 읽는 멋진 어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추억만 가져가도 고맙다"고 전했다.

요즘 안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는 독서교육활동을 팟캐스트 방송에 소개하기도 하고, 도서출판 담론과 함께 독서교육 관련 책을 기획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아이들이 '평생 독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펴 나가겠다는 포부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곧 내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아이들에게도 '너희들이 오늘 선생님한테 큰 스승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네요.(웃음)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생각하는 좋은 스승은 아이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 아닐까요?".<헤드라인제주>

<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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