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 '사전검열' 통제..법적근거 없는 대관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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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 '사전검열' 통제..법적근거 없는 대관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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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불허 결정의 위법성
조례규정 초월한 '과잉적 제약'...불허결정 법적근거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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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7일 열린 강정국제평화영화제 개최를 위한 시민모임 기자회견. ⓒ헤드라인제주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릴 예정인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앞두고 서귀포시당국이 영화제 조직위원회 및 강정마을회와 큰 갈등을 빚고 있다.

이유는 다름아닌 '서귀포 예술의전당' 대관신청 허가 문제 때문이다.

영화제 출품작을 상영한다는 취지에 볼 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으나, 대관신청을 한지 한달이란 시간을 끌어온 서귀포시당국은 최종적으로 대관을 불허했다.

큰 문제 없이 시설물 사용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영화제를 준비해온 주최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서귀포시가 조직위와 강정마을회에 구두 등으로 전한 불허결정의 사유를 보면 '불허를 위한 억지명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먼저 강정평화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와 사전에 논의해 진행한 행사라는 점, 그리고 영화제의 취지와 목적이 '비무장 평화의 섬 실현'으로 정치적 성격의 행사여서 어렵다는 것이다.

상영하는 34개 작품 중 7편이 강정마을을 다루고 있거나, 평창올림픽을 비판, 핵발전소에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거나, GMO(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작품들로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영화라는 점도 대관거부 사유로 제시했다.

한마디로 이번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고, 작품 내용이 정부정책에 반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는 문화예술의 자유로운 활동을 정치적 시각의 잣대로 통제하려는 발상에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줘야 할 문화예술영역에서 법적근거도 없이 '사전검열의 해악성'까지 드러내며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과 생명평화마을 조성이라는 취지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준비되고 있는 첫 행사다.

지난 2월26일 강정마을회가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산산이 깨어진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강정마을을 '생명평화문화마을'로 조성할 것을 선포한 후 처음 개최되는 국제문화예술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귀포시의 이번 불허 결정은 법적 근거없이 이뤄진 위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 영화제가 대관 불허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적근거는 무엇인가.

2014년 제정된 '서귀포 예술의전당 설치.운영 조례'는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하고 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및 공연 활동을 지원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및 공연 활동'이란 목적성에 비춰볼 때 이번 영화제가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구체적으로 이 조례 제4조에서는 예술의전당 자체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국제문화예술 교류 및 지방문화 예술 진흥을 위한 행사 △도민의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각종 문화예술 관련 행사 △각종 학술 세미나, 공청회, 토론회 등에 해당하면 사용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용허가 예시 첫번째의 '국제문화예술 교류'는 이번 영화제의 목적 및 취지와 당연히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두번째 예시에서는 '도민의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이바지'라는 전제로 해 문화예술 관련 행사에도 사용허가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설령 정부 시책에 일부 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인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부합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허가조건 어디를 찾아봐도, 이번 불허사유로 제시한 '정부 시책에 반하는 내용', '제주해군기지 반대단체와의 연계성' 등은 주관적 잣대에 불과할 뿐, 법적근거에 기인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즉, 서귀포시당국이 제시한 반대사유는 조례규정에 해당되지 않고, 오히려 '불허'한 그 자체가 조례위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서귀포시는 이번 시설물 사용허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작품 내용까지 문제삼으며 '사전 검열'에 준하는 결정까지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갖게 한다.

34개 작품 중 7편이 강정마을을 다루고 있거나, 평창올림픽 비판, 핵발전소에 부정적인 시각, GMO 위험성 경고 등 정부시책에 반하는 영화라는 지적은 명백한 '사전검열'에 해당한다.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함과 동시에 '사전 검열'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전검열은 현대 언론자유관의 효시인 밀턴의 사상에서 그 해악성이 제기돼 왔다.

밀턴은 언론자유의 경전(經傳)으로 높이 평가받는 <아레오파지티카>를 통해 "나에게 자유를 달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자유롭게 말하며, 자유롭게 추론할 수 있는 자유를 다른 모든 자유 이상으로 달라"고 했다.

오류 투성이인 검열관이 사전검열과 같은 통제를 감행한다면, 신의 의지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토론은 처음부터 차단되고 학문의 성장은 멈춰진다고 했다.

사전검열이 폐지하는데 따른 대안은 '사상의 공개시장'과 '자율교정 과정'으로 제시됐다.

즉, 사전검열을 하지 않더라도 진실과 허위가 동시에 공개적으로 논쟁됨으로써 결국은 그러한 과정에서 진실과 거짓이 가려지는 자율교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전검열을 폐지해 자유롭게 출판되도록 하고, 그 공개된 시장 속에서 진실과 거짓이 논쟁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려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서귀포시당국의 대관불허 결정과정에서 '사전검열'과 '표현의 자유 침해'란 지적이 쏟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문화예술 영역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사전검열이 아니라 예술의전당을 이용하는 시민들로부터 스스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강정마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정치적 편향성이 우려돼 불허한다면, 앞으로 역사적.현실적 내용에 근거한 문화예술운동은 모두 불허돼야 한다는 것인가.

표현의 자유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성'이 없는 한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내포된 의미이자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제약하더라도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귀포시의 이번 불허 결정은 오히려 조례 규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적 권리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입맛대로' 식 주관적 잣대로 인한 결정이 아니라면, 납득할만한 불허사유를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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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 2016-04-18 10:18:11 | 175.***.***.39
우리사회 표현의자유는 아직 요원한것같습니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표현을 해도 스스로 정화 자율조정의 기능을 할만큼 시민은 성숙해있다고 보는데 국가는 국민을 믿지 못하는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두려운건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