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제주공항 대혼란 사태...왜 이런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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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제주공항 대혼란 사태...왜 이런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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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4일간의 제주공항 마비사태, 남긴 과제는
재난대응 매뉴얼 '부재'...안이함이 부른 '망신살'

4일간 이어졌던 제주국제공항 '대란'은 26일 자정이 되어서야 끝이났다.

27일부터 항공기 운항이 모두 정상화되면서, 제주공항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함을 되찾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공항이 정상화되자 간단한 입장자료를 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항공사들의 적극적인 조치와 업무 협조로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 됐다"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관광객들에게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전부다.

대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한 공식적 사과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대응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한 것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인 조치'와 '업무협조'라는 자화자찬식 말이 무척이나 민망하고 의아스럽게 다가온다.

과연 제주특별자치도가 '적극적인 조치'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32년만에 찾아온 최강한파 속 폭설에서 비롯된 이번 제주공항 사태는 제주도의 재난대응 시스템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망신', 그 자체였다.

폭설에 따른 천재지변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의 대응체계가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제대로 귀가조차 못하고 밤낮 현장에서 사태수습에 매진해온 공무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난대응 시스템의 문제는 각각의 공무원들의 노고와는 별개로 정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제주도정의 실책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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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구구식 대응...폭설, 사전에 예측 못한 돌발적 상황인가?

첫째, 32년만에 찾아온 최강한파가 사전에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제주공항 체류승객에 대한 재난대응은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이다.

23일부터 제주도를 중심으로 강력한 한파가 내습하고 폭설이 예상된다는 것은 이미 기상정보를 통해 예고된 사안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재난대응체계는 주요도로변 제설 및 시설물 피해 예방에만 집중됐다.

원희룡 도정은 태풍 등이 내습할 때면 무더기 결항사태를 빚어지고 있는 제주공항 문제와 관련해 2014년 11월 한국공항공사, 제주지방항공청, 제주관광공사, 제주도관광협회 등과 재난대응매뉴얼인 '공항 체류객 불편사항 해소대책'을 만들어 시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해소대책은 선언적 매뉴얼에 불과했다. 실제 유관기관간 구체적 이행협약도 없었고, 체류하는 승객에 편의제공 등이 고작이었다.

이렇다 보니, 실제 상황이 발생하자 제주도정의 대응은 매우 주먹구구식이었다.

제주도가 올해 처음으로 영하 5~7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강추위가 예고되면서 활주로 결빙 및 폭설은 당연히 예상됐을법도 한데, 이에대한 대비책은 극히 소홀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 아수라장으로 변한 다음에야 '늑장 대응', 왜?

두번째, 사상 유례없는 대혼란 속에 공항운영 자체가 완전히 마비될 지경인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던 시점에서의 대응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전면 통제된 폭설이 시점인 지난 23일 오후 5시50분.

이날 낮 12시부터 이미 항공기 결항은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첫 초동대응은 이날 밤 시간대에 전세버스운송조합과 일부 버스운송회사의 버스를 공항에 투입해 도심지로 이동할 체류승객을 수송한 것이 전부였다.

당시 공항에는 가족단위 관광객 등 1000여명이 있었으나 이들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이들은 모두 신문지, 박스 등을 깔고 앉아 '쪽잠'을 자며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마치 난민촌을 연상케 했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24일, 체류 관광객은 순식간에 6만명으로 늘었고, 이때부터 제주도정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무부지사까지 현장에 상주하며 총괄지휘했다는 제주도정의 재난대응은 간식 및 담요 등의 지원, 교통편의 제공 등이 전부였다.

주요 기관장 및 단체 등의 '격려'와 '위로'로는 분명 한계가 있었음에도, 제주도정은 현장에서 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하지도 못했다.

급기야 전국 언론이 일제히 재난대응시스템의 문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주도정은 25일 오후 항공기 운항재개 발표가 이뤄진 후에야 체류승객에 대한 무료셔틀버스 운행 및 숙박요금 30~50% 할인 등의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항공기 재개이후 제주공항은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분명한 '늑장 대응'이었다.

◇ '빵'이 문제였나?...'대기표 순번' 왜 관여 못했나?

셋째, 대혼란 사흘째인 25일까지도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도 크게 미흡했다.

체류관광객이 9만명에 달한 25일 오후, 공항은 발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고, 밤이 되면서는 국내선은 물론 국제선까지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는데도 제주도정은 '빵'으로만 위로하려 했다.

당시 체류승객들의 불만은 '빵'과 '담요'가 아니었다. "빵을 달라", "담요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관광객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항의하고, 고성이 난무하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빚어진 가장 큰 이유는 항공권 발권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그 중에서도 저비용항공사 발권카운터에서 '대기표'를 현장에서 줄 을 선 순서에 따라 배부하는 이유가 컸다. 대기표를 받기 위해 현장에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 이것이 대혼란을 부른 한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대형항공사에서는 항공권 수속날짜를 기준으로 결항된 순서에 따라 대기 순번을 부여하고, 공항으로 나오도록 하는 안내 문자메시지에 따라 체류승객들이 이동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란은 적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당일 항공편 예약자를 중심으로 해 거센 항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항공사의 '결항순' 원칙은 저비용항공사의 '선착순' 보다는 훨씬 나은 시스템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결항순 원칙이 적용된 대형항공사 탑승예정 체류승객들은 상당수가 숙소에라도 돌아갔다가 연락을 받은 후 공항에 다시 나오면 됐지만, 저비용항공사는 기약없이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 국민안전처, 국토부, 제주도...유관기관들, 뭐 했나?

문제는 항공기 재개이후 '대기순번' 부여문제가 대혼란의 원인이라고 판단됐다면, 제주도정이 즉각적으로 긴급권을 행사해서라도 이 상황을 바로 잡으려 했어야 했는데도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항공사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는 제주도 관계자의 토로도 있었으나, 이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이번 공항대란 문제에 대해 국민안전처, 국토교통부, 제주특별자치도, 한국공항공사, 제주지방항공청 등의 유관기관이 있다. 이 유관기관의 수장들이 최소 공항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긴급 통제권 조차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매뉴얼에 그런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현장 상황을 파악해서 즉시적으로 각 항공사 관계자 긴급회의라도 열어서 '대기순번' 부여원칙을 마련해 시행하도록 했어야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항공기 무더기 결항사태가 발생할 경우 체류승객에 빵과 담요를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항에서 밤을 새는 체류객들이 없도록 근본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 때에는 23일 밤부터 항공기가 재개될 경우를 가정해 '대기번호'라도 신속히 부여했더라면, 또 그와 더불어 숙소 30~50% 할인 및 사우나로의 이동 교통편 제공 등이 진작에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 4일 대란 '미담사례' 홍보프레임...담화.행동요령은 왜 없었나

넷째, 제주도에 자원봉사자수가 10만명이 넘는다며 홍보를 해온 제주도정은 이번에 자원봉사자 운용도 체계적으로 가동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또 25일 밤 국제선에서는 중국인 등 외국인관광객들이 큰 혼잡과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되고 있는데도 '언어소통' 등의 문제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국제관광도시의 부끄러운 단면으로 남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4일간의 공항대란 속에 제주도정의 언론홍보 프레임이 시종 '교통편 지원', '간식지원' 등의 미담사례에 머물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체류승객에 대해 긴급히 협조나 양해를 구하는 담화나, 행동요령 등의 발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4일간 이어진 제주공항 대혼란 사태의 망신살은 재난대응 매뉴얼 부재와 안이함이 부른 화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7일 오후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재난대비 매뉴얼을 점검 및 보완, 선착순 발급 대기표 대란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와 항공사 등과 협의하며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조속한 제도적 정비를 기대해 본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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