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살 때 품은 '기부' 꿈 이뤄"...'부부 아너'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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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살 때 품은 '기부' 꿈 이뤄"...'부부 아너'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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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제주 3호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양정기.김순덕 씨
"목욕탕 30년.고깃집 10년...남은 여생은 베풂으로"

"없이 살 땐 남 도와주며 사는 사람이 참 부럽더라고. 그런데 이제 그 꿈을 이룬 것 같아(웃음)"

찢어지게 가난했던 1970년대. 12살의 꼬마 아이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목욕탕 청소에 지난 30년 세월을 바쳤다. 새벽 3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중노동의 연속이었다.

일을 하면서 아버지의 빚을 갚았고, 전라도에서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벌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차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내의 손맛 하나 믿고 고깃집을 차렸다. 어느덧 10년. 이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국 최고 맛집이 됐다.

제주 돈사돈 대표인 양정기(59), 김순덕(54.여) 부부는 몇 해 전부터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더랬다. 우연한 기회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를 접하게 된 이들은 지난해에만 무려 2억원의 기부금을 선뜻 내놨다.

지난해 5월에는 양정기 대표가 1억원, 12월에는 아내인 김순덕 씨가 1억원을 차례로 기부했다. 그렇게 이들은 제주지역 세 번째 부부 아너소사이어티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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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3호 부부 아너 소사이어티 김순덕, 양정기 씨. ⓒ오미란 기자
"목욕탕 때 비하면 요즘은 고생도 아니야. 그 때는 매일 달 보며 출퇴근하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였지. 둘이 싸우기도 엄청 싸웠어. 그런데 의도찮게 식당이 잘 된 거지. 다 인복 덕분이야"

양정기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 왔다고 했다. 8남매가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 그 중 양 대표는 당시 관공서가 몰려 있던 제주시 중앙로의 한 목욕탕에서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12살 때였다.

한 달 봉급은 2000원. 새벽 3시에 출근하고, 밤 9시에 퇴근하면서 번 돈이었다. 당장 생계가 급급했던 양 대표는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 한 번은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손님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교복값에 육성회비까지 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다.

뭐든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던 양 대표는 이내 곧 모든 빚을 청산했다. 한시름 놓게 되니 대통령도 안 부러웠다던 그였다. 그래도 목욕탕 일은 계속 했다. 할 줄 아는 일이 이 일 뿐이었다.

전라도에서 여행 온 아내 김순덕 씨를 만나 결혼한 뒤에는 둘이 함께 목욕탕 일을 했다. 마흔이 넘을 때까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 그러나 어느 순간 아차 싶었다. 심신이 모두 지쳐있었다.

그렇게 2006년, 전라도 손맛을 물려받은 순덕 씨의 요리솜씨를 기회로 재도약을 꿈꿨다. 제주시 노형동 공사장 한켠에서 인부들을 대상으로 점심엔 김치찌개, 저녁엔 고기를 팔았다. 이름은 '돈사돈'. '돈과 사돈이라도 맺어보자'는 뜻이었다. 제비뽑기로 뽑은 우연한 이름이었다.

이름 때문이었는지 개업 후에는 탄탄대로였다. 오픈하기 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섰고, 오르는 매출에 가게 확장부터 올해에는 본점을 새로 내기도 했다. 성공 비결을 물으니 겸손한 모르쇠로 일관했다. 순덕 씨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인복 덕분인 것 같다고도 했다. 양 대표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했는데, 전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이렇게 도와 주니까 밥 벌어먹고 살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너털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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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기 씨. ⓒ오미란 기자
"하루에도 열번은 자리에 눕고 싶지.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려고. 나중에 누가 먼저 갈 진 모르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이 보태주고 가자고 서로 결심했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가 이들의 삶의 화두였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3월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이들 부부에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홍보책자가 날아온 것. 돈사돈의 오랜 단골인 SKC 최신원 회장이 대표로 있는 단체였다.

양 대표는 "최 회장이라면 우리가 피땀흘려 번 돈을 헛되게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너 소사이어티에 1억원을 단숨에 내놨다고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미룸 없는 화끈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게 된 양 대표는 지난해 9월 세계공동모금회 자선 라운드테이블, 11월 전국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날 행사에 잇따라 참석했다. 그는 많은 기부자들을 만나면서, 기부에 대한 의지가 더 확고해 졌고, 순덕 씨에게도 기부할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

이에 아내 순덕 씨도 흔쾌히 따라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아너 소사이어티에 1억원을 쾌척했다. 제주지역 세 번째 부부 아너 소사이어티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부부는 지난 수년간 재능기부도 펼쳐 왔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돈사돈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이후 상호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고 있다. 조건은 '성실함'이다. 그렇게 전국에 25개의 '제주 돈사돈'이 문을 열게 됐다.

앞으로 양정기.김순덕 씨 부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제 인생에서 남은 건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일이라던 이들이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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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6-01-06 11:34:10 | 211.***.***.28
어렸을적에 그 목욕탕에 가면 자주 뵈었던 아저씨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