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우정 '구세군'으로...엄마들 거리 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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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우정 '구세군'으로...엄마들 거리 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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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절친' 제주 이주민 김종림.채성은씨
"시민들 온정에 더없이 행복...나눔문화 확산되길"

▲ 채성은 씨와 김종림 씨. ⓒ오미란 기자
'딸랑...딸랑...',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제주시 연동 제원아파트 사거리.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종종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던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섰다. 캐롤을 비집고 흐르는 구세군의 종소리에 곧 빨간 자선냄비 앞으로 다가와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었다.

세 살배기 아기부터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까지. 이어지는 시민들의 온정에 구세군들은 겨울바람이 찬 줄도 몰랐다. 자선냄비가 '펄펄' 끓을 수록 구세군들의 목소리는 더욱 '팔팔'해져갔다.

그 중에서도 두 엄마 구세군의 목소리가 유독 카랑카랑 야무졌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시종일관 발랄한 웃음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모습은 보는 이도 행복하게 했다.

주인공은 제주 이주민으로, 20년 지기 '절친'이자 동네 이웃인 김종림(46), 채성은(47) 씨.

지난 수년간 각자 도심 곳곳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을 펼쳐 온 이들은 올해 처음으로 가족 모두를 대동해 같은 곳에서 모금활동을 펼쳤다. 그 마지막 날, 거리에서 이들을 만났다.

▲ 왼쪽부터 채성은 씨와 김성림 씨 가족, 김성림 씨 옆은 아들 김재훈 씨(28), 남편 김형종 씨(42).ⓒ오미란 기자
소싯적 첫 직장이었던 한 섬유회사에서 인연을 맺은 김종림, 채성은 씨는 차례로 제주로 이주해 왔다. 산 좋고 물 좋은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서였다. 종림 씨는 지난 2002년, 성은 씨는 지난 2009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종교를 통해 봉사활동을 해 왔던 이들은 제주에서도 구세군 제주교회를 통해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무료급식, 푸드뱅크 사업에서부터 지역아동센터 운영까지 다양하다.

그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매년 연말에 진행하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이다.

일찍이 제주에 정착했던 종림 씨는 지난 10년 간 동문시장, 제주시청 일대에서 모금활동을 벌였고, 종림 씨의 추천에 성은 씨도 지난해부터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올해엔 이례적으로 제주시 연동에서 함께 모금활동을 펼쳤고, 가족들도 힘을 보탰다. 다같이 함께 하는 봉사에 여느 때 보다 신나 보였지만, 그 배경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씁쓸했다.

자원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선냄비 설치 과정에서도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이에 두 엄마 구세군이 두 팔을 걷고 나선 것.

이날 모금 직전, 종림, 성은 씨는 서로 빨간 산타 모자와 장갑를 씌워 주고 있었다. 참 정겨워 보였다. 그러나 얼굴엔 비장함이 흘러 넘쳤다. "이 구역은 내가 책임진다"는 농이 오가기도 했다.

▲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제주시 연동 제원아파트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고 있다. ⓒ오미란 기자
▲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제주시 연동 제원아파트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고 있다. ⓒ오미란 기자
▲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제주시 연동 제원아파트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내고 있다. ⓒ오미란 기자
어려운 여건에 조금 늦어진 지난 11일부터 보름 간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활동을 펼쳤던 이들은 지난 날을 돌아보며 울고 웃었다. 이어지는 시민들의 손길에 더없이 행복했다던 이들이었다.

하루는 수수한 차림의 한 중년 남성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모금함에 넣고 말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날 밤 확인해 보니 5만원권 56장, 총 280만원이 들어있었다고. 헌 봉투에 담긴 큰 마음에 자원봉사자 모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이 외에도 검은 봉지에 동전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저금통 어린이'에서부터 매일 저녁 집에 가는 길에 꼭 들러 기부를 하고 가는 '자전거 청년', 좋은 일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선뜻 기부금을 내놓던 중국인 관광객까지. 수많은 사연들이 자선냄비에 담겨 있었다.

물론 섭섭한 일도 많았다.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오해하거나, 구세군 자체를 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등과 혼동하는 시민들이 더러 있었고, 개중에는 욕설을 퍼붓는 시민들도 있었다. 종림, 성은 씨는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모았다.

종림 씨는 "사실 우리는 지금 시간만 내고 있는 거다. 기부는 보통의 마음을 갖고 하는 게 아니"라며, "정말 마음 따뜻한 분들을 만나면 고마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글썽였다.

이어 성은 씨도 "종림이 추천으로 처음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활동 했을 때 알았죠.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또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원봉사를) 하루만 하더라도 알 수 있어요. 그게 어떤 마음인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마음이죠"라며, "내년에는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작은 바람을 전했다.

12월은 종소리와 함께 온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12월 1일부터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의 12월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4일, 올해엔 11일에 첫 종소리가 울렸다.

내년 제주의 12월은 언제 시작될까.<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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