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도전하는 삶, 장애인 인식 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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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이야기] 임형민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임형민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헤드라인제주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나는 예상치 않은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때 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아무도 내게 장애인의 삶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행복했던 나의 삶은 낯선 병원생활에 점점 시들어만 갔고, 나는 그 속에서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찾아와 손을 내밀어준 이가 있다. 그는 나처럼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었는데 얼굴엔 항상 웃음이 가득했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동료상담가였고, 1~2주에 한 번씩 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며 상담을 해준다고 했다.

화장실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운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애인의 삶에 대해 사소한 것조차 아는 것이 없어 답답했던 나의 마음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시원해졌고 여러 가지 궁금증들도 해결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비슷한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기관을 알려주었다. 나는 퇴원을 하면 그곳에 꼭 한번 찾아가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퇴원을 하고,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대상에서 주체로'라고 쓰여진 큰 액자가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앞으로 내 인생 또한 나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귀를 떠올리며 나는 나만의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무엇이든 시작하고 나면 익숙해지는 법. 자립생활센터를 오가는 동안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자립생활 이념을 알아가며 나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하던 활동가의 권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 활동에 도전하게 되었다. 3개월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모니터링 기간 동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지역사회 변화를 위해 많은 것을 조사하고 경험하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큰 의미들을 남겼다.

의료기관의 장애인 접근성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병원에는 휠체어가 편히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와 장애인화장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도 안내판이 설치됨은 물론 장애인주차장 또한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 방문한 시각장애인이 사전에 점자자료를 요구할 경우 점자로 된 자료도 제공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누가 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를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 장애인당사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보였다.

보통 의료기관은 장애인들의 이용 빈도가 높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만, 그에 비해 장애인화장실의 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다친 사람, 링거를 맞고 있는데 손이 불편하여 링거를 휠체어에 걸고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화장실은 한 층에 겨우 하나정도 마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남자용과 여자용을 구분하지 않고 공용으로 만들어놔서 행여나 여성분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무안한지 모른다.

장애인주차장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휠체어 이용자 및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의 승하차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 폭을 일반 주차 공간보다 충분히 확보하는 게 기본이지만, 일반 주차장에 장애인 주차장인 것처럼 색을 칠하거나 표시만 해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장애인에 대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단순히 형식적인 보여주기 식의 제공은 장애인의 실직적인 접근성을 가로막는 것이라 생각한다. 장애인 당사자를 도리어 우롱하는 것처럼 여겨져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병원이나 학교, 동사무소 등 공공기관의 편의시설을 그나마 이용이 가능하지만, 소규모의 공원이나 축제 행사장 등의 편의시설은 이용이 너무나 어렵다. 불가능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를 찾았지만, 주차장,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서 축제를 함께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장애인 당사자의 마음은 정말이지 씁쓸함만 가득하다.

과거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한다. 허나 아직까지도 장애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당사자 스스로 개선을 요구하고 이를 감시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 '장애인 인식개선의 필요성' 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실천과 도전을 하는 것이 이러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라 생각한다. 내게 필요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당당히 요구하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것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장애인이 되기 이전에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솔직히 전혀 없었다.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였던 활동가의 소개로 알게 된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나는 오늘도 장애 당사자들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임형민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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