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빠진 교육행정협의회...진한 아쉬움 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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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빠진 교육행정협의회...진한 아쉬움 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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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사전 협의 완료된 교육협의회, 무난하기만 한 논의
뜨뜻미지근 안건만 상정...기관 간 의견차 좁힐 만한 기제 없어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5일 공식석상에서 마주한 교육행정협의회는 사전에 협의된 내용을 토대로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훈훈한 덕담과 격려가 오갔다. 원희룡 지사는 주요 교육현안에 대한 협력 의지를 밝혔고, 이 교육감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공적을 치켜세우기도 하며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논의된 안건은 총 6건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협력, 위기청소년 지원을 위한 협력 강화, 제주어 보전교육 협력방안, 전기차 보급 확대 협력, 특성화고 졸업 청년 취업 지원, 국립해사고 유치 협조체제 등의 사안에 대해 상호간의 협력의지를 다졌다.

대동한 실국장들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안건을 나눴고, 이 자리는 약 40여분간의 짧은 시간 끝에 정리됐다.

그러나, 이날 협의회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다소 의문이 든다. 근 일년만에 만난 자리였음에도 사전에 모든 사안들이 협의된 마당이라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뤄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협의회 직전 배포된 보도자료 상에는 이미 모든 사안에 대한 협의가 완료됐음이 예고돼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30분간 도지사와 교육감 인사말과 안건설명 등이 이어지고, 이후 20분간 공동 기자회견과 맺음말로 이어지는 순서였다. 미리 쓰인 공동합의문은 보도자료로 회의직후 배포하겠다고 약속됐다.

실제로 본격적인 안건 협의 절차에 접어들어서도 두 기관장은 "각 실국장들의 주도하에 사전에 협의된 사안들"이라며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세부 내용에 대한 대화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최종 의결은 도지사와 교육감의 손에서 이뤄진 사안이었겠지만, 결국 이날 협의회를 주도한 것은 실무자들이었고, 두 기관장은 형식상의 '인사치레' 목적으로 참석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교육행정협의회는 제주도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지역 행정의 주체가 되는 두 기관장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각자의 업무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1년에 한 번씩이나마 정례적으로 모이도록 조례상에 명시한 것도 직접적인 책임 권한을 지닌 행정 수장들의 의견 교환, 그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혹여 민감한 사안을 끄집어 내 두 기관이 첨예한 입장차를 보인다 하더라도, 설령 모인 자리에서 뚜렷한 결정이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정책 철학을 나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것이 협의고, 큰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닌가.

가까운 예로, 직전해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은 고등학교 무상교육의 도입 여부를 두고 각자의 입장을 견지하며 팽팽히 맞선 사례를 둘 수 있다. 두 기관은 이 자리에서 결국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협의회는 도민사회가 무상교육 도입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제가 됐고, 두 기관도 다시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사안은 '속도조절'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장기 과제로 분류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렇기에 이날 협의회에서 다뤄진 안건의 적절성도 일말의 의구심이 남는다.

분명 의미가 있는 안건들이지만, 굳이 이날 협의회에서 도출했어야 할 안건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협력의 경우, 만약 제주에서의 유치가 성사된다면 도와 교육청 간 협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이뤄졌을 사안이다. 장소 배정을 협의하는 내용이어서 그야말로 실무자 선에서 해결지을 수 있을 내용으로 여겨진다.

제주어 보전교육, 국립해사고 제주유치를 위한 공동 협력 등의 사안도 모든 도민사회가 공동의 노력으로 성사시켜야 할 과제다. "협의를 이끌어냈다"고 공표할 만한 성과로 보기엔 다소 마뜩잖은 이유다.

사실 지역 교육현안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자면 의논할 사안들은 얼마든지 있다.

두 기관의 입장차가 뚜렷한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 과실송금 허용 문제에 대해 제주 지역사회에서 하나된 목소리를 규합하기 위해 안건으로 다뤄질 수도 있었다. 언론 상으로, 비서실의 정보보고가 아닌 직접적인 대화를 통한 논의가 오갈 수 있었다.

쇠락해가는 원도심과 원도심 학교를 함께 살려나갈 방안을 논의할 수도 있었고,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폐지 논란이 일 당시 원희룡 지사 본인도 공식석상에서 필요성을 공감한 무상급식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이 오가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지난해 격론을 거친 끝에 후일을 도모키로 한 고교 무상교육과 관련된 안건을 재차 끄집어낼 수 있었지만, 논란이 일 만한 안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것에 비해서는 다소 맥빠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원희룡 지사는 민선6기 제주도정 출범 직후 "생각이 달라도 연대하고 협력해 결국 하나의 제주를 지향하는 포용의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석문 교육감도 "도정과 교육청이 동반 성장하는 조력자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화답한 바 있다.

두 기관이 줄곧 주창하고 있는 '개혁'은 진통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같은 지향점을 보기 위해서는 이 진통을 온전히 맞서야 할 시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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