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만에 쏟아낸 통한의 '4.3 눈물', "우리 아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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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만에 쏟아낸 통한의 '4.3 눈물', "우리 아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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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증언에 나선 양용해 할아버지의 '4.3과 아버지' 기억
"손 묶인채 끌려간게 마지막일 줄이야...이런 불효가 어디에"
4.3증언에 나선 양용해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 <헤드라인제주>

31일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열네번째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기억 in 4.3'에서는 이제 82살이 된 양용해 할아버지(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가 나서 67년만에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말쑥한 차림으로 두번째 증언자로 나온 양 할아버지(제주시 애월읍 장전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후, '4.3이란'에 물음을 던지며 "지슬이란 영화에서 4.3을 실제적으로 접근해 잘 보여줬지만, 실제 4.3은 참으로 두려웠고, 무서웠다"며 격정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4.3을 단순히 어려운 시절, 무서운 시절이었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참혹했다"며 자신이 16살때인 중학교 2학년 때(1946년) 겪었던 얘기를 전했다.

◆ "살해당하는데 '이 사람이 내 사촌이다' 말 한마디 못했어"

당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삐라를 뿌린 혐의로 경찰에 연행돼 물고문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는 그는 1948년 애월읍 장전리 마을 전체가 소개되자 외할아버지가 사는 신엄리로 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신엄지서(파출소) 특공대원으로 활동을 하며 경찰들과 같이 토벌을 나가거나 마을 보초를 서는 일을 하던 중 오촌 당숙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분이 내 사촌이다"라는 말 한마디 못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피신생활을 하던 우리 오촌 당숙이 신엄지서로 끌여왔는데, 경찰들이 나보고도 나와서 보라고 했다. 내가 못보겠다고 하자, '이놈도 같이 죽여야 될 놈'이라고 하길래 할 수 없이 나갔다"면서 "오촌 당숙이 눈 앞에서 철창 살해당하면서 죽어가는데도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왜, 제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토로하며 가슴을 쳤다.

양용해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이 4.3증언을 하며 흐느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양용해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이 4.3증언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말 안장에 손 묶인채 끌려간게 마지막일 줄이야...이런 불효가"

어린 소년에게 닥친 4.3의 비극은 1950년 6.25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터지고 며칠 후인 7월쯤, 신엄지서장이 말을 타고 그의 집 마당에 들어왔다고 한다.

"지서장이 아버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았다. 마침 가족들과 점심식사 중이던 아버님이 일어서자, 쌀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라. 전대에 보리살 얼마를 담아 허리에 동여매고 밖으로 나가자, (지서장은 아버지에게) 포승을 채웠고, 말 안장에 손을 매달고는 아무말도 없이 끌고 갔다."

그는 "그것이 제가 본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 정말 한이 맺힌다"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쨌든 아버님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싶었다. 그래서 어쨌든 진정서라도 제출해 보려고 뛰어다녔지만, 진정서에 한 사람도 호응을 안해줬다"며 모두가 자기 목숨 지키기 위태로운 극도의 공포상황이었음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이후 아버님의 소식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유족들은 당시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던 예비검속자들이 제주국제공항(옛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당했거나, 산지항 앞바다에 수장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사법적 절차도 없이..."라며 흐느끼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멍에가 씌워져 귀도 막고, 눈도 막고, 입도 막고 어디가서 입도 뻥끗 못하게 하며 '연좌제'라는 아주 무서운 올가미를 씌웠다"며 자신이 겪은 연좌제 피해 사례도 전했다.

그가 공군으로 입대해 비행기 정비업무를 할 당시, 항공정비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바로 그 시점에 그에게 '빨간줄'의 연좌제가 들이밀어졌다.

영어전수교육을 받은 후 정복을 갖춰입고 대구 공군본부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갑자기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하고는 공군특수수사대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됐다고.

"수사대에서 우연히 동기생을 만나게 됐는데, 신원조회 서류를 보여줬다. 사상관계란에 '아버지는 43사건에 활동하다 형살된 자이며, 숙부는 입산활동하다가 행방불명자임'이라고 써 있었고, 저에 대해서는 '유학 중 도주할 우려가 있음'이라고 빨간 글씨로 적혀있었다."

그는 이 연좌제 문제로 유학은 고사하고 40일간 연금돼 있다가 재복무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후, 26살때 동네 이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다가 1976년 '애월면장'에 추천돼 신원조회를 하던 중 또다시 연좌제 문제가 불거졌다고 한다.

"군수가 임명하는 애월면장이지만, 사실은 윗 기관에서 신원조회를 통해 하는데 이번에도 사상관계란에는 군대에서 봤던 그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더라. 정말 기가 막혔다. 다만 말미에 '유신체제에 적극 협조하는 자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더라."

우여곡절 끝에 그는 1976년부터 6년간 애월면장과 애월읍장을 지냈다.

◆ "아버지 명예회복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2014년 마침내 국가 배상판결"

4.3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말못할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으나, 그는 아버지를 명예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4.19 등때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02년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가 결성됐고, 그가 직접 회장을 맡아 13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2005년 제주시 용담동에 위령비와 제단을 조성해 6월25일에 맞춰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201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제주예비검속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면서 명예회복 추진은 급진전을 이뤘다.

그를 비롯한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연이은 승소판결에 이어 4년 9개월만인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 학살책임에 대해 국가는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저는 이제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아직 국가 보상은 받지 못했지만, 국가로부터 잘못을 인정하는 이 판결은 아버님에 대한 명예회복을 이룬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수많은 희생자들이 공항 지하 어딘가에 잠들고 있는데, 하루빨리 양지바른 곳에 묻어두려야겠다"면서 유해발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또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고통의 역사를 똑바로 전하면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며 완전한 4.3진상규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역설했다.

양용해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이 4.3증언을 하며 흐느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칠순 부부의 또다른 4.3이야기..."토벌대 부르는 소리 듣지 못한 청각장애 어머니를 총살"

이날 본풀이마당 증언에서는 양치부(76).김순혜(78) 부부가 겪은 4.3 이야기도 전해졌다.

김순혜 할머니는 12살 되던 해, 4.3 당시 군인들이 발사한 포에 파편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파편 제거수술을 받아 완치됐다고 생각했으나 계속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 왔다. 이 때문에 치병굿을 여러차례 하기도 했다.

1994년이 돼서야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 속에서 폐에 박힌 파편 조각을 발견한 김 할머니는 이듬해 파편 제거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여전히 4.3후유장애를 앓고 있다.

양 할아버지는 4.3 당시 부모를 모두 잃은 경우다. 아버지는 당시 연미마을에서 오라리로 소개된 뒤 토벌대에 연행됐고, 이후 목포형무소로 이송됐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청각장애인이었던 어머니는 4.3 당시 피난을 가던 중 토벌대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그의 부모의 경우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아 현재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본적지별로 위패가 나뉘어 진설돼 있는데, 부부 위패가 함께 모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기억 in 4.3'.에 증언자로 나온 양치부.김순혜 부부.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기억 in 4.3'.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기억 in 4.3'에 증언자로 나온 양치부.김순혜 부부. <헤드라인제주>
31일 열린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기억 in 4.3'..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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