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나오니 현석이 신났네, 신났어...다음에도 꼭 와!"
"어휴, 이 엄마 껌딱지! 간만에 봄 나들이 나오니 신났네, 신났어. 다음에도 꼭 같이 오자?"
시각장애 1급, 지적장애 1급인 오현석 씨(20. 제주시 이도2동)의 발걸음은 어느 때 보다도 가뿐해 보였다. 보이진 않지만 온 몸을 휘감는 봄 기운에 어느덧 새봄이 찾아왔음을 감지한 현석 씨였다.
꽃밭을 뛰노며 은은한 허브향을 맡아보기도 하고, 10년 가까이 연마해 온 꽹과리 실력을 자랑하며 모두에게 웃음꽃을 선사하던 현석 씨. 그 옆에는 항상 어머니 문영미 씨(43. 지체장애 4급)가 서 있었다.
때때로 품에 안기는 현석 씨를 따뜻한 손길로 보듬던 그녀의 눈빛에는 행복함과 함께 작은 걱정도 묻어 있었다. 지난달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아들 현석 씨의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신문 헤드라인제주와 제주특별자치도청 존샘봉사회(회장 강은숙)가 주최하고,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가 공동 주관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열 사람의 한 걸음'> 행사에는 문영미씨 모자가 동행에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아침 일찍 제주시 종합경기장 광장을 찾은 현석 씨는 꽤 두터운 복장이었다. 햇살은 밝았지만 현석 씨에게는 아침공기가 아직 찼던 모양이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곁의 어르신들이 낯설었는지 현석 씨는 계속 엄마품만 파고들었다. 반면 문영미 씨는 꽤 익숙해 보이는 인상. 지난해 동행 행사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가 두 번째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를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허브향이 가득한 '제주허브동산'. 150여종의 허브와 야생화에 둘러쌓인 현석 씨는 온몸으로 봄의 정취를 느꼈다. 형형색색의 꽃이 보이지 않아도 길가에 흐르는 꽃향기만으로도 행복해 하던 현석 씨였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봄 나들이를 나오게 돼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오늘 같은 날이 언제 또 있을는지...현석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많이 외로워했는데 오늘 많이 웃으면서 활력을 되찾는 것 같아요."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제주일출랜드.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웅웅' 울리는 미천굴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풍물놀이장에서 들리는 '덩기덕' 국악소리까지, 현석 씨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단연 압권은 풍물놀이장에서 펼쳐진 현석 씨의 공연이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동행팀은 물론, 관광객 아줌마 군단과도 어울리며 꽹과리를 치는 현석씨의 모습은 좌중일대를 자지러지게 했다.
그렇게 20여분간 이어졌던 현석씨의 공연은 결국 엄마의 처절한(?) 만류로 끝이 났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집중력이 대단하다며 엄지를 척 올릴 정도. 한순간의 국악 해프닝으로 동행팀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알고보니 현석 씨는 장애인부모회 주말학교 풍물반에서 10년 가까이 꽹과리를 쳐 왔었다고.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난 뒤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꽹과리를 우연찮게 만나 기분좋은 추억을 쌓게 됐다던 문영미 씨였다.
"현석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부모가 백날 이렇게 있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점이 오게 된 거죠. 아직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데...걱정이네요"
요즘 현석 씨 가족은 지난 2월 제주영송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된 현석 씨의 앞날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장애진단을 새로 받기도 했고, 중증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을 알아보느라 매일이 바쁘다고.
그런데 현석 씨가 생소한 시력검사를 거부해 진단결과가 늦어지고 있는 데다, 부족한 보호시설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대기번호도 어느덧 10번대. 1년 동안 준비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는 문영미 씨였다.
문영미 씨는 "내 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현석 씨와 함께 졸업한 20여명의 경우도 같을 거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들과 손을 맞잡은 문영미 씨는 "현석이 또래의 많은 아이들도 이렇게 좋은 날 밖에 나와 많은 걸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앞으로 하루하루 매일이 오늘 같기를 바라면서.<헤드라인제주>
<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