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등굣길' 통학대란..."지옥버스가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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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등굣길' 통학대란..."지옥버스가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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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시간 조정 후 터져나온 '버스전쟁'...왜 이런 문제가
버스시간표는 '그대로'..."등교시간 늦추면 뭐해?" 볼멘소리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에게 지난 5일간의 등굣길은 '지옥의 레이스'였다.

손잡이가 무색한 '만차' 버스에 몸을 싣거나, 그런 만차버스가 정류장을 '쌩'하고 지나치는 걸 지켜보거나. 지각만은 면하겠단 일념으로 정류장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족'도 생겨났다.

이 같은 '통학대란'에 일찌감치 아침잠과 아침밥을 포기하고 한산한 버스를 택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품이 나고 배꼽시계가 울려도, 고되고 위험천만한 버스를 타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다.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등교할 수 있도록 등교시간을 늦추는 '아침밥이 있는 등굣길' 정책이 신학기를 맞아 본격 시행된 지 5일째. 학생들의 동선을 고려한 통학대책이 수반되지 않으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의 늑장대응과 '엇박자' 행정까지 빚어지면서 이 같은 통학대란은 장기전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6일 오전 7시 50분 한라대학교 앞에 정차 중인 50번 버스. 학생들이 출입구 앞 계단까지 내려와 서 있고, 창문은 버스 안의 학생들의 입김으로 김이 서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다. <헤드라인제주>
6일 오전 7시 50분 한라대학교 앞 만차상태인 50번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노형중 학생들.<헤드라인제주>

◆ 버스시간표는 '그대로'..."등교시간 늦추면 뭐해?"

하귀휴먼시아와 삼화지구를 잇는 50번 버스의 경우 노형중과 한라중, 아라중, 제주여중, 탐라중 등 10여개 학교를 거치는 제주시내 주요 통학버스로 통한다.

등교시간이면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던 50번 버스였지만 지금은 그 포화상태를 넘어선 수준이다.

아슬아슬하지만 버스계단이라도 올라설 수 있으면 다행이고, 무거워진 버스가 느리게 가더라도 사고없이 잘 도착해줬으면 하는 게 버스 통학생들의 심정이다.

외도동에서 버스를 탄다던 김 모양(15)은 "항상 불안해요. 만차라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며칠 전에는 타긴 탔는데 버스가 많이 무거웠는지 2번 정도 시동이 안 걸리더라고요. 내릴 때도 무섭죠. 한꺼번에 우르르 내리니까 넘어지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서 모양(15)도 거들었다. "요즘엔 서서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이죠. 불안한 건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면서 버스를 놓치게 될 때예요. 잠이고 밥이고 간에 일찍 나와야죠. 앞 정류장에 미리 가 있는다던가. 놓치면 30분 뒤에 버스를 타야 되니까...등교시간 늦추면 뭐하나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30분 정도 등교시간을 늦추고 있지만, 시내버스 시간은 종전과 달라진 게 없고, 학생들이 등교시간에 가까운 버스시간대에 한 꺼번에 몰리면서 이 같은 '통학대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

특히 학교가 버스종점에 있거나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경우 통학여건은 더욱 좋지 않다.

신성여고에 다니는 이 모양(17)은 "당장 셔틀버스를 신청해야 할 것 같다. 5일 동안 눈 앞으로 지나간 버스가 몇 대인지 모른다. 시간여유를 두고 정류장에 나와 봐도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서귀포에 있는 위미중에서도 혼란이 빚어졌다. 늦춰진 등교시간에 맞는 버스가 없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1km 정도 떨어진 정류장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다고. 버스타는 걸 포기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위미중의 한 교사는 "작년부터 등교시간 버스가 학교 앞까지 올 수 있도록 했어요. 몇 년간 민원을 넣었죠. 그런 와중에 등교시간이 바뀐 거예요. 학생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못 보고 있죠"라고 밝혔다.

6일 오전 7시 50분 한라대학교 앞 만차상태인 50번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노형중 학생들.<헤드라인제주>

◆ 제주도청-교육청 엇갈린 행정..."최소 6개월 걸려"

늦춰진 등교시간에 맞게 버스시간을 조정해 달라는 민원은 지난달 초순 일선학교에서 시작됐다.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의 늑장대응과 엇갈린 행정으로 개학 직전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민원을 접수받은 제주도는 지난달 초순께 교육청에 등교시간 변경현황 제출을 요청했으나, 당시 전체 185개 학교 중 61개 학교에 대한 현황만 파악하고 있던 제주도교육청 측의 보고는 전체 시내버스 시간을 논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말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 버스업체 측이 함께 모여 협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끝이 났다.

도청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자체적으로 등교시간을 조정하겠다고 해서 1월 중순에 학교로 공문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며, "당시 저희 쪽과는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가만히 놔두면 혼란이 생길 것 같아 지난달 초순에 교육청에 협의를 요청했다"며, "(등교시간 조정의 경우) 독단적으로 해서 될 게 아니고 시스템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9일까지 등교시간 변경현황을 정리해 도청에 제출할 것"이라며, "학교끼리도 의사소통이 돼야 하는 문제기 때문에 당장 시내버스 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변경된 등교시간에 맞는 시내버스 시간 조정은 최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 '아침밥이 있는 등굣길' 구호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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