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예술가 꽃 피워낸 '아르브뤼' 10년...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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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예술가 꽃 피워낸 '아르브뤼' 10년...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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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아르브뤼' 미술관 건립 성균관대 김통원 교수
"제주서 제3세계 정신장애인 예술가들 육성하고파"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 수(及) 없다. 광적으로 덤벼들어야만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우연히 한 정신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그림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광기'야 말로 궁극의 예술작품이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후로 그는 예술(Art)과 순수함(Brut)을 뜻하는 '아르브뤼(Art Brut)'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기존 원칙과 기법을 거부하는 작품활동과 함께 정신장애인 작가들의 예술작품 2만장 가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는 '아르브뤼' 미술관을 설립하려던 그였지만 당시 고상했던 사회분위기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김통원(58)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10여년 전 일본 지인의 소개로 아르브뤼에 매료된 후 혈혈단신 전국의 정신병원을 찾아다니며 아르브뤼 예술작품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한국판 장 뒤베페라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지난해 12월 9일 장애인 50여명과 함께 '아르브뤼' 미술관을 가오픈식을 가졌다는 것. 김 교수는 오는 3일 최종 건축계획 승인만을 남겨두고 정식 오픈을 고대하고 있다.

서귀포시 고군산 뒤켠 오솔길을 따라 국내 최초의 '아르브뤼' 미술관을 건립한 김통원 교수를 만나봤다.

'아르브뤼.아웃사이더 아트 미술관(가칭)'.<헤드라인제주>
김통원 성균관대학교 교수.<헤드라인제주>

◆ "방방곡곡서 아르브뤼 작가 발굴...소수자 예술 포용해야"

"미국 비영리기관인 파운틴 하우스(Fountain House)의 아시아훈련센터사업으로 1986년 서울 마포구에 정신장애인 자활시설 태화샘솟는집이 설립됐어요. 일본, 대만, 싱가폴 등에서 많이 방문했죠. 그 때 한 일본 관계자가 일본판 아르브뤼 도록을 보여주면서 한국에서도 찾아보라고 한 게 시작이었죠."

실제로 찾아보니 정말 나오더랬다. 김통원 교수가 처음 만난 정신장애인 작가는 주영애(50.여) 작가였다.

주영애 작가의 작품활동은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했던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거실바닥에 여러 장의 화지를 이어 붙여 오로지 크레파스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미술관에 가 보면 요즘 '제주 소길댁'으로 통하는 이효리를 그린 작품, '밤의 여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밤의여인' 주영애 作.<헤드라인제주>

김 교수는 독립군(?)과 같은 마음이 들어서일까, 절대 정신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으로는 비지니스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두 작품씩 모으다 보니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정신병원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말려도 굳이 그리겠다는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런 사람이 '우리 작가'가 된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작품수집은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왔다. 금액도 상상초월이다. 7년째 들어서는 작품 수가 500장을 넘어가면서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김 교수는 오래전 사 뒀던 서귀포시 고군산 일대 부지에 '아르브뤼' 미술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지난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6개월 동안 목수 1명과 함께 직접 망치질에 나섰던 그였다.

"팔꿈치가 다 나갔다"고 작은 투정을 보이기도 했던 김 교수는 곧이어 사흘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건축계획심의를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많이 떨린다"는 소회를 전했다. 아마도 우리나라 첫 '아르브뤼' 미술관이 건립된다는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2009년에 국내 최초의 아르브뤼 전시회를 연 데 이어서 국내 최초의 아르브뤼 미술관이 건립됐다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르브뤼가 '소수자 예술'인 만큼 공공의 성격이 크다고 보고 있고,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황후의 꿈' 주영애 作.<헤드라인제주>
'아르브뤼.아웃사이더 아트 미술관(가칭)'.<헤드라인제주>

◆ "제주서 제3세계 작가 키우고파...세계적 아트페어도 가능"

"정신장애의 경우에는 가정에 지워지는 부담이 굉장히 커요. 환자 1명에 모든 가족이 매달려야 하니 집안이 내려 앉기도 하죠. 그런데 주변에서 '작가님,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면 확 달라집니다. 소위 미친다고 하면 100% 미쳐있는 줄 아는데, 아녜요. 치료 측면에서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김 교수는 정신장애인의 예술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비영리 단체인 '한국 아르브뤼'를 꾸준히 운영해 오고 있다.

비록 고통 속에서 피는 꽃이지만 아르브뤼 작가들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가 일반인들에게도 공감될 수 있다면 아르브뤼가 우리 사회의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한국아르브뤼가 주최한 '아르브뤼 전시회'는 그동안 총 10여회에 걸쳐 진행됐다. 특히 '전국 아르브뤼.아웃사이더 아트 공모전'의 경우 국회전시회로 세 차례나 진행됐다고. 수상 학생의 교사에게 '장관상'을 수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공모전은 교사들의 사기진작에도 꽤 임팩트가 컸다는 평이다.

김 교수는 아르브뤼 전시회의 경우 정신장애인 작가와 장애인 당사자들과의 만남을 비롯해 작가의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으로 자리잡으면서 서로를 보듬는 '치유의 장'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생태교육에도 조예가 깊은 김 교수는 아르브뤼 미술관 일대를 생태교육지로 조성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미술관 주변을 잘 살펴보면 크건 작건 나무 하나 허투루 자른 것이 없을 정도.

지난해 일찍이 주민등록지를 제주로 옮긴 김 교수는 제주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생각에 다소 들떠 보이기도 했다.

생태교육지를 바탕으로 한 아르브뤼 훈련센터를 조성한 뒤 제주에서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의 정신장애인을 키워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던 그였다. 나아가 세계적인 아르브뤼 아트페어를 평화의 섬 제주에서 개최해 보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제주에는 비장의 카드로 내밀만한 '문화'가 필요해요. 정체성 없이 그저 보여주는 문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아르브뤼에는 작가들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 있죠. 이것이 문화의 힘입니다. 꿈이 있다면 평화의 섬 제주에서 제3세계에 있는 정신장애인 작가들을 키워 나가고 싶습니다"

'아르브뤼.아웃사이더 아트 미술관(가칭)'=서귀포시 고군산리 273번지.<헤드라인제주>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영애 作.<헤드라인제주>
무제 박제우 作.<헤드라인제주>
'너는 어디에 너는 어디에' 김정명 作.<헤드라인제주>
'너와 함께' 김정명 作.<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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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2015-05-19 08:43:14 | 223.***.***.129
정신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꼭 필요한 장소가 아름다운 제주도에 생긴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앞으로 추진하시는 일에도 많은 관심이 기대됩니다.

양김진웅 2015-02-15 19:10:18 | 1.***.***.156
기사 잘 읽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네요.
하루 속히 건축계획심의 및 행정처리 절차가 잘 끝나서 많은 관람객들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