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막장 리그'...누구 잘못이 더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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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막장 리그'...누구 잘못이 더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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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예산안 파장, 시시비비와 책임 경중
연내 처리냐, '준예산' 파국이냐...의회 결단이 관건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제주도정과 의회의 갈등 충돌상황이 도를 넘어선 듯 하다. 연일 저잣거리에서나 봄직한 거친 설전과 그들만의 이전투구식 논쟁은 이제 막장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따가운 도민사회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결파문에 이은 예산안 재심의도 객기에 가까운 의결로 이어지고 있다.

한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해야 할 세밑 민생현장은 크게 어수선하다. 예산안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사상 첫 '준예산' 현실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된 걸까.

두 기관간 예산안 대립갈등이 처음 표면화된 것은 지난 10월14일 구성지 의장이 예산편성 과정에서 의회와 사전협의를 하자는 '협치예산' 제안 기자회견 때부터다.

이 제안이 발표되자 제주도정이 곧바로 거부하고 나서면서 갈등은 크게 분출됐다. 의원 1인당 20억원씩 재량사업비(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이어진 11월 의회 예산안 심의에서는 원희룡 도정이 편법논란이 있었던 문화예술협치위원회 관련 예산을 비롯해 '선심성 예산'을 대거 편성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도정이 뭇매를 맞았다.

결정적인 것은 계수조정 과정에서 '삭감'과 '증액'의 타당성 논란이었다. 의회는 상임위원회 계수조정에서 347억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60억원을 추가해 총 408억원을 삭감해 증액 조정하는 것으로 수정을 가했다.

원 지사는 증액예산에 대한 사유 설명없이 의결된 것에 크게 지적했고, 의회는 증액사유 설명이 물리적으로 어렵고 관례도 없다며 거부했다.

예산안이 상정됐던 본회의장에서는 증액예산에 대한 사유설명 없이는 타당성 검토가 불가능해 동의여부를 밝힐 수 없다는 원칙을 밝히는 발언을 하던 원 지사가 구 의장으로부터 발언을 제지받고 퇴장 경고와 함께 마이크가 꺼지는 '굴욕'을 당하는 일도 일어났다.

결국 새해 예산안은 부결처리됐고, 현재의 재심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원 지사의 '20억원 요구' 및 '자기들끼리 다 짜놓고 동의' 발언, 구성지 의장의 '옆에 있었으면 싸대기', '의장에게 칼 들이대?" 등 험악한 설전이 이어졌다.

◆ 제주도정 vs 의회, 누구 잘못이 더 클까

이 일련의 상황, 누구의 책임이 더 큰 것일까.

하나하나 상황을 정리해 본다면, 첫째 최초 '예산안 편성 사전협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작은 것에 집착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원 도정의 실책이 분명해 보인다. 설령 제안의 이면에 '재량사업비' 요구조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전협의 자체를 거부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전협의 속에서 도정과 의회가 예산편성 및 심의의 큰 원칙에 합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 의원들이 제시한 소위 주민 민원사업 리스트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선별할 수도 있었다.

물밑에서는 의원들이 제안한 사업예산을 상당부분 반영해줬다고 하나, 공개적 사전협의와는 차원이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편성권은 집행부에 주어진 고유권한이라며 의장의 제안을 단박에 거부하면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했다. 그거도 '협치(協治)'를 표방한 원 도정이 편성권 운운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예산편성 과정에서 개혁 내지 혁신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깔끔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차례 부결파문 후 '백기투항'으로 끝난 민선 5기 도정 첫해의 예산안 기조는 '민간보조금 개혁'이라는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하지만 젊음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원 도정의 첫 예산안은 편성기조가 분명치 않았다. 색깔도 불분명하고, 군데군데 특정 민간단체에 편향적 지원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바로 이 점이 이번 갈등논쟁에서 원 도정측이 '원칙론'을 내세웠지만, 도민사회로부터 강한 탄력적 힘을 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편성과정에서 최소한의 예산개혁을 하고 원칙을 강조했다면 어쩌면 지금처럼 팽팽한 대치구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셋째, 예산심의를 통한 계수조정의 결과는 도의회의 명확한 패착이다.

문제는 심의과정에서 '선심성' 지적을 실컷 해놓고, 계수조정을 통해 또다른 '선심성'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업비를 대거 증액시켰다는데 있다.

총 408억원이 삭감 손질된 계수조정 내역을 보면 일부 '증액예산 확보를 위한 삭감'이라는 의구심을 받는 항목도 있으나, 나름대로 심도있는 심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라고 흔쾌히 인정을 한다고 하자.

그러나 증액예산은 누가 보더라도 설득력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큰 덩어리' 사업비들을 대거 삭감한 후 이를 쪼개고 쪼개어 민간단체 등에 배분하는 방식이 그대로 행해졌다.

실제 삭감항목은 260여건에 불과하나, 증액항목은 1320여건에 달했다. 한개의 사업비를 삭감한 후 평균적으로 5~6건의 사업으로 쪼개어 증액한 셈이다.

특정단체나 특정지역 행사에 조금씩 더 얹혀주는 식의 증액을 기본으로 해, 신규로 항목을 신설해 사업비 배정이 대거 이뤄졌다.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 준비없이 사업명칭 하나만 갖고 즉흥적으로 예산을 재편성한 것이다.

'예비비'로는 단 한푼도 증액되지 않았다. '선심성 증액잔치'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쟁점으로 떠오른 원 지사의 '증액사유 요구 및 동의권 행사'는 원칙이 무너진 계수조정의 결과가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수조정 과정의 즉흥적 신규사업 편성에 대한 해명으로 "국회에서도 그러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부분도 있지만, 차원은 달라 보인다. 국회 증액의 경우 대부분 지역개발사업에 관한 것으로 사업계획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지역에서 예산반영을 요구했으나 정부 편성과정에서 제외됐거나, 예산반영이 미진한 사업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모성 민간행사 등에 대거 증액된 의회 계수조정 내역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예산파문 책임, 의회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럼, 결론적으로 이번 예산안 파문의 책임은 어느쪽에 더 큰 것일까.

파국으로 치달은 근본적 원인이 '증액명분'에 있었다는 점, 예산안 최종 의결권을 의회가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의회 책임이 더 크다.

의회에서는 일부 "도정에서도 선심성 예산 많았다"는 지적도 하고 있으나, 이는 네가 법규를 위반했으니 나도 위반했다는 어리석은 항변에 다름없다.

편성예산에 문제가 있다면, 의회 심의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잘못된 예산 혹은 선심성 예산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전적으로 도의회의 몫이다. 이것이 의회의 견제기능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한술 더 떠 선심성 증액으로 맞대응 하는 것은 의회 본연의 역할을 스스로 저 버리는 것이다.

◆ "삭감은 하되, 증액은...", 의회가 결단 내려야

결국 꼬인 실타래를 푸느냐 여부는 의회의 결단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구 의장이 우려하는 대로 새해 예산안이 연내 처리되지 못해 사상 첫 '준예산' 체제로 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예산안 연내 처리여부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재심의 과정에서 다시 돌출된 '의원 1인당 20억원 배정 요구' 논란은 예산안 처리와는 별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에 중요한 것은 '막장 리그'의 끝맺음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번 예산갈등의 본질이 예산 편성과 심의 전반의 잘못된 관행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한 예산개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감정적 충돌로 이어진 원 지사와 구 의장이 화해를 하고 적당히 조정안을 마련하는 선에서 끝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졸속적 타협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개연성이 있다. 혹 그렇게 된다면 올해와 같은 상황은 내년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원 지사와 구 의장은 최근 방송토론회에서 예산개혁을 위해 제주도정과 의회 간 TF팀을 구성해 예산전반에 대한 개혁작업을 진행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2016년 본예산부터 적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는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다.

'20억 논란'으로 이 합의가 흔들거리고 있지만, 예산개혁 의지가 진정이라면 현재 재심의가 진행 중인 예산안이 바로 그 첫걸음이어야 한다.

상임위에서는 최초 부결됐던 계수조정안을 그대로 적용해 통과시키면서, 예산안 연내 처리여부는 이제 예결위의 결론만 남아있다.

예결위가 종전 계수조정안을 그대로 고집해 의결한다면, 또다시 파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의회에 강력한 책임론이 대두될 것은 자명하다.

이번 파문과 관련해 의회가 책임을 덜 수 있는 방법은 계수조정 재조정 뿐이다. 선심성이 의심되는 사업예산이라면 추가 삭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증액예산에 대한 기득권 내지 집착을 포기하는 것이다.

재조정이 어렵다면 차라리 기존 증액 '408억원'을 백지화하고, 삭감분 전액을 예비비로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존 증액예산 항목 중 중요한 것이 있다면 협치예산 예산개혁 TF팀을 조기에 가동시켜 내년 추경안 편성 때 협의를 통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4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막장이 아닌 유종의 미를 기대해본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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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2014-12-26 19:37:14 | 110.***.***.70
분석기사 제안에 공갑ㄴ합니다
삭감한 돈 모두 예비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