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한 대학생의 '노란우산 행진'...그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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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한 대학생의 '노란우산 행진'...그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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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제주대서 시청까지 7km 도보행진 박요한 씨
"세월호 4월 16일 기억하며 첫 걸음...이젠 혼자 아니에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14분이면 노란우산을 펼쳐 드는 한 청년이 있다.

제주대학교에서부터 제주시청까지 매주 약 7km에 걸친 도보행진을 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박요한 씨(27)가 그 주인공. 박 씨는 지난 수요일이었던 1일에도 여전히 행진길에 오르고 있었다.

그가 노란우산 행진에 나선 지도 벌써 두 달째.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 내에 행진이 끝났으면 했던 박요한 씨의 바람은 그리 쉽게 이뤄지진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유족의 의사를 반영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진을 시작했기 때문. 현재 세월호 정국은 특별법 여야합의로 한고비를 넘기는 듯 한 모양새지만 유가족을 배제하는 등의 문제로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래도 외롭진 않다. 박요한 씨 곁에는 이러한 노란우산 행진 취지에 공감하는 '벗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선.후배 등 '절친'은 물론,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초면인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그는 이번 행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에서 기회를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지난 수요일이었던 1일 오후 6시 14분 제주대 정문 앞에서 어김 없이 노란우산 행진을 준비하던 청년 박요한 씨를 만나봤다.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박요한 씨.<헤드라인제주>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행동 없이 살아 왔어요. 그러다 우연히 강정평화대행진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됐죠. 걷는 게 나름 재밌더라고요. 조금 지나서였을까. 뉴스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노란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걷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박요한 씨가 현실사회로의 첫 발걸음을 뗀 건 강정평화대행진에서였다. 한 여름이었던 7월 말, 3박4일간의 도보행진으로 진행됐던 강정대행진은 박 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8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크게 일었을 즈음, 그 때 박요한 씨가 뉴스를 통해 마주한 건 단원고 학생들이 노란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었다. 박 씨는 강정에서의 경험과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에서 어떤 연결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된 박요한 씨의 '노란우산 행진'은 8월 16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 씨는 방학기간 동안 제주대서부터 제주시청에 위치한 세월호 집회장까지 총 7km를 매일 노란우산과 함께 걸었다.

이어 카카오톡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으로 발전했다. 여담을 풀자면 박요한 씨는 이번 행진을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에 처음 가입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던 그를 가엾이(?) 여긴 선.후배들이 '제주노란우산' 페이스북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라고.

"대개 선.후배들이기도 했지만 모르는 친구들도 참 많았어요.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A가 B를 데려오고, B가 C를 데려오는 식이었죠. 그렇게 모여서 많게는 10명이 걷기도 했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정말 좋겠지만, 처음부터 혼자 하려고 했던 거라 큰 욕심은 없어요"

박요한 씨는 취지가 취지인 만큼 노란우산 행진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처음엔 '침묵행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서 '청년' 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했고, 여러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기도 했다고.

행진을 하는 동안 서로를 격려하는 몇 마디를 주고 받기도 하고, 치열한 정치 토론회가 열리기도 하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의 숫자를 거꾸로해 6시 14분이라는 행진 시간을 정하는 등의 귀여운 아이디어도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란우산 행진이 그리 쉬운 도전만은 아니었다. 대부분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학생들이어서 참여율이 다소 저조한 것이 고민이라면 고민. 그러나 박요한 씨는 참가자가 많아지면 좋겠지만, 혼자 하려고 했었던 만큼 큰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참가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힘이 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수요일이었던 1일 오후 6시 14분 노란우산 행진에 참가한 (왼쪽부터) 김보라(22), 김광철(27), 박요한(27), 임다빈(24) 학생.<헤드라인제주>
박요한 씨와 함께 노란우산 행진에 나선 대학생들.<헤드라인제주>

"어느 날에는 현수막을 빌려 행진을 하기도 했어요. 중앙여고 쪽으로 지나가는데 여고생 3명이 '세월호...'라고 말하면서 지나치더라고요. 그 때 기분이 참 묘했어요. '세월호 세대'인 학생들이 행진을 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얘기를 입 밖으로 낸다는 게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더라고요"

박요한 씨는 이 얘기를 하면서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간접적이었지만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노란우산 행진을 하기 전, 박요한 씨의 카카오톡에는 가족을 포함해 총 7명 밖에 없었다. 삶 자체를 바꿔나가려고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런데 반년 만에 100명 이상의 친구들이 생겼다.

"저는 어떤 기회가 주어지면 그 기회 내에서는 그래도 곧잘 수행하기는 했었어요. 근데 그 기회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움직이려고 하고 있어요. 인생이 조금 의미 있어졌거든요"

박요한 씨는 올해 초부터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하는 등 학업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강정에 첫발을 내딛어 보기도 했다. 이어서는 이번 노란우산 행진까지 직접 기획해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가 비단 세월호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더 행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

박요한 씨는 정치학을 더 공부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청년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좋아 학교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요즘 청년들의 숨이 무거운 것 같아 안쓰럽다고도 했다. 10대, 20대 처럼 10 단위로 끊지 말고, 15 단위로 끊으면 좀 여유가 생기려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어른들께서 '기다려 줄게'라고 말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청년들을 보면 취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기비하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요.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의 삶에 대한 폭력이 만연하죠. '요즘 뭐 하니?', '취업은 했니?' 말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기다려 줄게'라고 토닥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박요한 씨는 지금 하고 있는 노란우산 행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하며 말을 매듭지었다. 처음부터 세월호와 관련한 진상규명이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월호 세대'인 청년들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삶을 버리고 늘 정치적인 이슈를 바라보라고 하는 건 너무 강압적인 요구인 것 같아요. 다만 투표를 통해 선출된 나의 대변인에게 미약하나마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있는 거죠. '어떻게 잘 하고 있나' 하고 말예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주노란우산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jejunoranwoosan.<헤드라인제주>

박요한 씨와 함께 노란우산 행진에 나선 대학생들.<헤드라인제주>
비가 오는 날에도 박요한 씨와 함께 노란우산 행진에 나선 대학생들. 우비를 입은 박요한 씨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에 나서고 있다.<헤드라인제주>
박요한 씨가 제주대학교 정문에서 노란우산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노란우산 행진 종착지인 제주시청 일대에 도착한 행진단.<헤드라인제주>
노란우산 행진 종착지인 제주시청 벽화 앞 집회현장에 도착한 박요한 씨.<헤드라인제주>
노란우산 행진 포스터.<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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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형 2014-10-08 20:21:07 | 203.***.***.67
형, 존경하고 앞으로도 하는 일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 계속 힘내, 마음으로나마 응원할께!

좋은땅 2014-10-03 16:04:11 | 112.***.***.44
요한/노란 우산! 가장 슬프고 참담한 우산이다.하지만 그대와 같은 젊은이들이 있기에 희망의 우산이다. 행정학보다는 정치학이 나아!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되거든..어린 줄만 알았는데,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