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상흔' 86살 할머니, 66년전 형무소 찾아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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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상흔' 86살 할머니, 66년전 형무소 찾아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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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박춘옥 할머니의 '4.3수감길'..."내 나이 스물둘에 빨간 줄"
1948년 불법 군법회의, 전주형무소 수감..."쌀 한 되 줬다고 모진 고문"

"전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참으로 생경허이"

푸른 연잎으로 수놓인 전주 덕진공원을 찾은 박춘옥 할머니(86)는 허망하다는 듯 한마디 내던지고는 아직 채 피지 못한 연꽃 봉오리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할머니에게 전주는 스물 둘 나이에 겪은 악몽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제주4.3 전주형무소 수형생존자 박춘옥 할머니(86).<헤드라인제주>

할머니의 전주형무소 상흔의 시작은 1948년 5월 10일 총 선거였다. 당시 교장선생님이었던 그녀의 외삼촌은 이날 토벌대에 의해 운명을 달리 했는데, 이를 직접 목격한 할머니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어 산으로 가라고, 해변으로 가면 다 죽는다는 마을 이장의 말에 그녀는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두 살배기 아이를 품에 안고 밭에서 밭으로 숨어 다녔다.

가시리 동네에 불이 붙는다고 달려나간 26살 남편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이후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남편의 제사는 생일 날 치러진다고.

하루는 내천 옆 큰 바위를 옮겨 숨고, 하루는 큰 나무 뒤에 웅크려 숨어 다니던 스물 두 살의 소녀였던 그녀는 그렇게 보름을 산에서 보냈다.

그녀는 토벌대가 코 앞에 다가와도 울지 않던 아기가 계엄령이 해제되자마자 울어 잡혔다고 했다. 아이 덕분에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다며 아들을 혼내려고 해도 혼낼 생각이 안 나신다고.

이후 서귀포 경찰서로 이송된 박 씨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고문 뿐이었다. 고문의 이유는 산으로 올라갈 때 쌀 한 되, 간장 한 컵, 돈 5원을 가져갔다는 것. 거기다 남로당 회의를 주재했다는 동네 주민의 거짓 발고까지 더해져 고문은 갈 수록 심해졌다.

"음력 11월 10일이었어. 죽어도 못 잊어. 허공에 매달린 채 고무방망이로 온 몸을 맞아 정신을 잃었어. 고문관이 팔이 아프다고 찬 물 한 번 끼얹더니 다시 전기고문을 하더라고. 끔찍했지..."

이틀 뒤 그녀는 관덕정 부근 경찰서로 다시 이송됐다. 30~40명이 들어갈 정도였던 유치장에는 100명 이상의 사람이 부대꼈고, 박 씨는 웅크린 무릎 위에 아기를 올려 놓은 채로 한 달을 살았다고 한다. 수시로 아이 얼굴에 손을 갖다 대며 숨 바람이 이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딱 한 달 뒤인 음력 12월 12일 그녀는 목포행 배편, 전주행 밤 기차로 끌려 다녔고, 결국 전주형무소로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1948년 12월에 진행된 1차 불법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그렇게 스물 둘 나이를 전주형무소에서 보내게 됐던 것이다.

제주4.3 전주형무소 수형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를 허망하다는 듯 지켜 보는 수형생존자 김영숙 할머니(84)와 박춘옥 할머니(86).<헤드라인제주>

지난 6일, 박 할머니는 제주4.3 수형생존자들과 함께 전주형무소를 찾았다. 2007년 순례 참석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졌다 것. 그리고 전주형무소의 마지막 흔적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황망하게 끌려 왔던 지난 날의 기억을 찾으려 이리저리 분주히 눈을 돌리던 그였지만, 전주형무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던 터였다.

이어진 제주4.3 전주형무소 수형희생자를 위한 진혼제가 봉행되는 동안에도 박 할머니는 시종일관 침통해 보였다. 지난 날의 악몽이 불현듯 떠오른 듯 했다.

"우리가 저지른 죄가 무엇이 있어. 죄 없이 끔찍한 고문 받고 이렇게 불구가 되고, 고향 떠나 타지에서, 그것도 감방에서 아들 키웠던 것 생각하면 원 야속해서...구천으로 간 벗들 생각하면 미안해서 괴로워. 올 때마다 묵념이라도 해야 고개라도 들고 다니지"

옛 전주형무소 터를 찾은 제주4.3 전주형무소 수형생존자 박춘옥(86) 씨.<헤드라인제주>

박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고향 사람들이 전주형무소로,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됐다고 한다. 대부분 별다른 이유 없이 징역 5년, 7년을 언도받은 제주도민들이었다.

"우물통에 목욕물을 받으라고 해서 가 보니까 가시리 동네 사람 9명이 보이는 거야. 내 오랜 벗들...그런데 목욕시킨 다음 날 바로 서대문형무소로 데려가는 거야. 80명 정도 전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어"

"그 때는 개성이 북한 땅이 아니었을 때야. 서대문형무소에 간 사람들 중에는 이북으로 간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 거의 영양실조 걸려서 죽었다고..."

이 후에도 박 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사람'이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스물 둘 나이에 사랑했던 남편과 오랜 우정을 쌓은 벗을 잃고 66년을 살아 온 할머니의 조언이었다.

그러나 박 할머니는 그 소중했던 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모른다. 몇 년에 한 번 전주형무소 터를 밟아 보며 매번 끔찍한 상상을 해 볼 뿐이다.<헤드라인제주>

4.3사건으로 1948년 12월 불법 군법회의서 징역 1년은 선고받은 박춘옥 할머니(86)는 아이와 함께 전주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사진은 전주 덕진공원을 찾은 박춘옥 할머니(86).<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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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2014-06-10 22:57:29 | 220.***.***.19
언제면 제주도는 4.3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진상규명을 제대로 안 하기때문인데
새로운 도지사에게 기대를 해도 될까?
암담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