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장애인 응급안전서비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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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장애인 응급안전서비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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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44>이민철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간사
장애인 자립생활에 힘이 되어주는 것
이민철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간사.<헤드라인제주>

살아가다 보면 그런 날이 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에 잠기는 날, 세상의 실패라는 실패는 모두 나를 향하고 있는 듯 느껴지는 날, 이제 도무지 더 이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날,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또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 이래서 세상은 살 만하구나’하고 느껴지는 날,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날, 기특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날, 무슨 일이든 실타래처럼 술술 풀리는 그런 기쁜 날이 있습니다.

제가 자립생활을 시작한지 5년째가 되어갑니다. 그 동안의 과정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것이 장애인이 사회통합의 한 일환이라 생각하고 견뎌냈고, 작지만 제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뇌성마비라는 장애특성으로 생겨나는 근육의 강직(경직)으로 인해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는 날이 많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때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슬픈 나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해 한해가 갈수록 뇌성마비 강직증세가 잦아지게 되면서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으나 실제로 24시간 지원이 되지 않아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난 이후에는 제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중증장애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활동보조인 24시간 서비스 지원이 정책적으로 실행되지 않고 있고 최근 2013년 고 김주영 활동가와 파주남매 등 화재로 인한 중증장애인들의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 특히 저와 같이 혼자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안전사고에 대하여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최근 중증장애인의 안전 시스템 구축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 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이후에 행여나 있을지 모를 응급사고나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던 중,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국가시범사업으로 시행하는 중증장애인응급안전서비스라는 정책이 생겼다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저 혼자서 있어야 하는 불안한 시간에 가장 기본적인 응급안전보장에 대한 길이 생겼다는 소식에 당장 응급안전서비스를 신청하고 댁내장비를 집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안전망.<헤드라인제주>

실제로 2월 어느 날 아침 강직이 찾아와 출근도 하지 못하고 평소 먹고있던 약을 먹고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점심때가 되자 강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활동보조인도 없는 상태에서 고통에 괴로워하다 얼마 전 집에 설치한 응급안전서비스 응급호출기를 통해 119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마음병원 응급실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응급안전서비스 담당자분들이 찾아오셔서 저의 건강 상태와 여러 상황을 물어보시고, 제가 안정을 되찾자 그때야 뒤늦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을 통해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으로 인해 응급실에 누워있으면서도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혼자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제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는 중증장애인응급안전서비스로 인해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하여 대처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중증장애인응급안전서비스와 활동보조서비스는 혼자 독립된 공간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입장에서 자립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서비스입니다.

오직 행복만이 나의 삶을 감싸 안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행복한 날들만이 내 인생에 가득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자립생활을 위해 지치고 힘든 시간들, 그리고 행복한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치고 힘든 시간, 행복한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인생이자 앞으로도 이어져갈 제 자립생활의 귀중한 원천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이 중증장애인응급안전서비스를 통해 응급상황,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중증장애인응급안전서비스로 인해 더 많은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혜택과 인권권리증진의 기틀이 되고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에 커다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민철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간사>

장애인인권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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