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요구'로 바꾼 우리동네 풍경, 어때요?
상태바
'정당한 요구'로 바꾼 우리동네 풍경, 어때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인 인권이야기]<43> 고봉균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
고봉균/ 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헤드라인제주>

제가 모은행과 거래한지 9년 정도가 되어갑니다. 처음 거래할때만해도 현금 자동 입출금기가 지금처럼 정문쪽이 아닌 후문쪽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후문에는 바탁에 계단이나 턱이 없어서 휠체어가 다니기에 편했던 겁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바깥 활동을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잠시지만 직장이 생겨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월급날이 되어 돈이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려고 은행에 갔는데 현금 자동 입출금기가 후문쪽에서 정문쪽으로 옮겨져 있는 겁니다. 할 수 없이 후문으로 들어가 은행창구를 가로 질러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작년에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서 진행하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편의시설에 대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인권포럼을 통해 동료상담이나 편의시설 모니터링에 참여하면서 문제의식을 갖고는 있었습니다.

장애인일자리에서 직접 편의시설이 잘되어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사진을 찍어서 비교해보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과제도 수행할 겸해서 한 극장에 가게 되었고 극장 안에 있는 장애인화장실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참 한심했습니다.

   
바뀌기전.<헤드라인제주>
   
바뀐후.<헤드라인제주>

잠금장치가 없어 용변을 보는 도중 밖에서 문을 열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창고도 아닌데 청소도구가 안에 쌓여 있었습니다. 순간 고민을 했습니다. 극장 관계자들에게 얘기를 해야 할지말지. 사실 내가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극장 관계자를 찾아가 얘기를 했더니 뜻박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몇일 후 다시 찾아가보니 청소도구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지만 잠금장치는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다시 관계자를 찾아 얘기를 했더니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인일자리에서 전후 상황을 얘기했더니 일자리 담당자인 송창헌 팀장이 그렇다면 일자리 참가자분들이랑 같이 가서 다시 건의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 참가자들 여럿과 같이 가서 극장 관계자와 면담을 했고 결국 잠금장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이 경험이 나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래 은행으로 찾아갔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은행 청원경찰이었습니다. 그분께 현금자동입출금기가 정문쪽에 있지만 그쪽에는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후문으로 들어와 창구를 가로질러 가야 이용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분 말이 은행측도 그 점을 알고는 있으나 정문의 경우 경사로를 설치할 여건이 안되어 자신들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계속 방법이 있을거라고 얘기를 하자 은행 관리자분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내가 준비해서 간 경사로 관련 자료들을 보더니 내부적으로 다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주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몇 번의 연락이 오고가고 언제쯤 경사로가 설치될지 기다리던 중, 은행에 볼일을 보기 위해 들렀더니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나 반가웠고 뿌듯했습니다.

지금도 은행 앞을 지나갈때마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성분이나 걷는게 힘드신 어르신들이 경사로를 이용하는 모습을 모면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정당한 요구를 한다면 우리 주변의 풍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고봉균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활동가>

장애인인권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