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대자보'..."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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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대자보'..."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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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와 SNS의 만남, 그리고 '안녕하지 못한' 지성의 응답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진=뉴시스>

1987년 4월3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 외벽을 비롯해 교내에 대자보(大字報)가 나붙었습니다. '한라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으로 시작하는 총여학생회 명의의 대자보는 수많은 주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4.3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대자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학가에 붙여진지 불과 몇시간 되지 않아 대학당국과 대학에 상주하는 경찰에 의해 긴급히 떼어졌습니다. 이를 작성한 총여학생회장은 다음날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4.3진상규명의 변곡점으로 불리우는 이른바 '4.3 대자보' 사건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고, 이 정도 내용 갖고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 시절, 암울했던 당시에는 매우 큰 일이었던 듯 합니다. 4.3이란 말 자체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했고, 정부를 비판하면 ‘유언비어 날포죄’로 잡아가곤 했으니까요.

대자보에 대해 얘기를 할까 합니다. 당시 시국문제에 있어 청년학생들의 주장을 밝힐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대자보와 유인물, 크게 두가지입니다.

대자보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붙이는 대형의 게시문이라는 의미죠. 우리나라 대학가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초까지 크게 성행하였습니다. 대자보가 붙여질 때면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어 꼼꼼하게 읽어내려갑니다. 그것도 운 좋은 학생들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금세 떼어져 버리곤 하니까요.

1987년 제주대학교에 나붙었던 '4.3대자보'. <헤드라인제주>

또 하나, 대자보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나 유인물이라는게 있었습니다. 타자기 혹은 컴퓨터, 복사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1980년대에는 철필로 일본말인 '가리방'(등사판)을 긁은 후 시커먼 잉크를 부어 종이 한장 한장에 등사기로 미는 방식의 유인물 제작이 이뤄졌습니다. 작업을 할 때면 손과 작업장 곳곳은 잉크 범벅이 되곤 합니다.

이러한 등사도구 마저 없으면 똑같은 내용을 직접 일일이 수십장씩 써가며 만드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당시 대자보와 유인물은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공론화의 장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자보가 붙여질 때마다, 유인물이 뿌려질 때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이뤄집니다. ‘

'4.3 대자보' 사건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학내에서는 한달 넘도록 수업거부를 하며 이에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4.3 진상규명 요구의 도화선이 되어습니다. 금기시됐던 '4.3'을 공론장으로 불러오고, 이는 제주4.3특별법 제정, 그리고 2004년 4.3진상조사 보고서의 채택으로 이어집니다. 대자보 한 장의 위력을 실감케 한 사건이었죠. 

세월이 지나면서 대자보는 사라졌습니다. 대자보라는 커다란 벽면종이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이 대체하면서 자연스러운 도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쉬움을 갖게 한 것은 대자보와 함께 공론의 장도 사라졌다는 것이었습죠. 정치와 지역현안은 대학가의 주요이슈에서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자보는 '멸종'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0일 고려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었습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4213명의 직위해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등 현 시국을 강력하게 논한 한 대학생의 대자보를 통한 외침은 '안녕하지 못한' 수만의 응답으로 피드백되고 있고, 전국 대학가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학가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녕들 하지 못한' 지성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피드백이 뜨겁습니다.

정치권도 바싹 긴장하고 있습니다. 한 대학생의 외침이 정국을 강타한 것입니다. '청년은 살아있다'라는 희망을 보게 합니다.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해온 '대자보'가 SNS와 만났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수많은 지성들이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권이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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