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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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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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42> 유용한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유용한 / 제주장애인인권포럼.<헤드라인제주>

주말이면 두살 된 어린 딸이 쉴새 없이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는 탓에 책 한 페이지 넘기기도 힘든 나날이지만, 오랜만에 낮잠을 깊이 자준 딸의 배려로 인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대출기한 하루 앞두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 필요한 책이 있어 도서관 자료실에서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라는 책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과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여기저기 자주 불려다니지만 관용어 이상이 되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심지어 자신의 관점이나 사고가 온전히 스스로의 것이 아닌 타자에 의해 점령되는 일조차 일상화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 국가들이 비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를 어떻게 형성하고 확산시켜 왔는가를 명증하게 보여줬다.

오리엔탈리즘은 심지어 그 대상이 되는 동양인들에게 전이되면서 자신조차 서구인의 관점으로 대상화하게 되는 비극을 불러온다. 겉모습은 여전히 검은 머리카락과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있지만 사고나 행동을 하면서, 러시아계 한국인 학자 박노자가 가슴 아프게 지적한 것처럼 하얀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키가 작은 남자를 루저라고 비하하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나라에서 온 사람에겐 그렇게 멸시에 찬 눈빛을 보내면서도 거리에서 영어로 길을 묻는 금발머리에게는 여기는 분명 한국임에도 스스로의 신통치 않은 영어실력을 원망하면서 손짓발짓 다해가며 길을 안내해주고 과잉 친절을 베푸는지도 모르겠다.

장애계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본질은 장애를 만드는 환경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다. 그럼에도 장애인들 스스로조차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언론이나 주변에서 강요하는 ‘장애극복’ 이미지에 전도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자폐증 장애인인 크리스토퍼의 관점으로 쓰여진 “한밤중에...”를 읽다보면 셜록 홈즈처럼 추리하기를 즐겨하고 수학에 뛰어난 재능과 관심이 있는 그에게 오히려 세상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폐라는 장애가 만든 그만의 세계이다. 바깥 세상은 단지 합리적이고 비상한 머리만 있으면 답을 얻을 수 있는 난이도 높은 수학 문제와 같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가 앞집에서 기르던 개를 살해한 범인을 밝혀내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심을 관철시켜나가면서 그의 자아가 확대되는 경험을 그린 성장소설로 읽힌다. 그 성장 과정은 ‘장애극복’의 도식처럼 나도 이런 일을 해냈어가 아닌 잃어버렸던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자기 밖의 세계와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 보편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는 내면의 여정이다.

중동인으로 태어나 서구에서 성장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러나 그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문제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외부의 시선임을 깨달았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지난한 고민 끝에 완성해낸 저작이 “오리엔탈리즘”인데 크리스토퍼가 “한밤중에”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이 명저가 보여주는 인식에 못지않은 감동을 전해준다. 그것도 어렵지 않고 유쾌하게 말이다. <헤드라인제주>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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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배 어린이 2014-01-13 18:19:22 | 27.***.***.62
좋은 글입니다. 이런 글이 많아야 신문의 질도 살지요.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