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어느 농부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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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어느 농부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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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집의 사방팔방] 남보다 더 잘산다는 것은

내가 즐겨보는 텔레비전 중에 SK 채널 ‘119조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 CNN방송에서도 ‘911’이라는 흡사한 프로가 있는데, 어떤 위험한 지경에 처한 사람을 소방구조대가 구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실제 있었던 다큐멘터리(documentary)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만들어서, 워낙 환경감각이 어수룩해서 한번 다녔던 길도 못 찾는 길치인 나는 이 프로그램이 새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잊은 채 마치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양 손에 땀을 쥐며 보곤 해진다. 이 프로에 나오는 주인공이 커다란 주전자 속에 엉덩이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전깃줄에 걸려 날지 못하는 두루미도 있었고, 어쩌다 재래식 변소에 빠진 남자도 있었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사소하고 기상천외한 위험 외에도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 프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과 가장 비근한 드라마이면서도 해피엔딩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119’의 실패사례를 방영하는 것을 나는 이제까지 본 기억이 없으니, 일단 프로의 소재가 되는 일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결국은 살아 날 것이고 오히려 지금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느끼는 공포를 극복한 사람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한 시나리오라는 것을 잊고 다른 시청자들도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으리라!

나는 원래 영화나 소설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데, 현실에서 해피엔딩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지라 아무리 재연이라 하드라도 감동을 받으면서 보게 되어 진다.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지난 해 홍수 때 빠져 죽을 뻔한 한 농부이야기를 방영 되는 것을 보았다. 시내를 건너다가 넘어지면서 바위에 머리를 다쳐 기절 했는데 의식을 차리니 몸은 움직일 수 없고, 물은 불어 점점 가슴 위로 올라오고 있더라는 것이다.

날은 어두워 오고 머리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정신은 아득하고, 이게 바로 죽는 것이구나, 하며 지독한 죽음의 공포를 실감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천운으로 인적도 없는 그곳을 누군가 우연히 지나다가 발견하여 ‘119’를 부른 것은 다음날 새벽이다. 다친 한 농부의 호흡은 거의 멈추고, 가사 상태에 있을 때였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일상으로 돌아간 그 농부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목숨을 건지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각오를 말해 보라는 기자의 말에 수줍게 웃으며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잘 살아 야죠” ‘잘 산다’ 아주 막연한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가 곧 “잘”이라는 부사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리라 생각 했다.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난 목숨인데, 정말로 두 번째 사는 것이나 마찬 가지인데, 열심히 일해 더 많이 돈을 벌고 자식 잘 교육 시켜 성공시키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윤택하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농부는 계속해서 하는 말은 예상 밖이었다.

“이제 살려고 해요, 다른 사람에게 해 안 끼치고 말이에요, 저야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나요, 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다른 사람에게 해 끼치지 않도록 살려고 하는 것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 농부는 수줍게 웃었다. 그에게 ‘잘 산다’말의“잘”은 돈을 풍족하게 쓰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단지 남에게 해를 기치지 않게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껏 생가 했던 ‘잘 산다’는 의미와는 사뭇 다른 얘기다.

반평생을 험하고 좌절하면서 살다보니 전투근성이 생겨서인지, 내게 있어 ‘잘 산다’는 의미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남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대접 받으면 사는 것이었다.

따져보면 ‘잘’이라는 말 자체는 추상적인 단어로 ‘능숙하게’ ‘제대로’ ‘올바르게’ ‘탁월하게’ 라는 뜻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산다.’와 합쳐 ‘잘 산다’가 되면 나는 즉각적으로 물질적인 것과 연결 시켜 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 잘사는 사람이니?” 라고 물으면 당연히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냐는 의미로 받아 드려 지는 것이다. ‘제대로’ ‘참되게’ 사는 사람이냐는 뜻으로 받아드려지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고 고백이다.

그 농부가 한 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산다.”는 어찌 보면 쉬운 일 같지만 생각해보면 너무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살다보면 직접적으로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휘둘러 남에게 해를 줄 수 있고, 또 뒤에 숨어서 남이 불이익을 당하도록 일을 꾸밀 수도 있고, 아니면 꼭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좋은 뜻으로 한 일이 결과적으로 남에게 해가 되는 일도 있다.

또 “배고픈 것은 살지만, 배 아픈 것은 못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나도 모르게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시샘하고 질투하여 은근히 속으로 그 사람이 잘 못되기를 바라는 것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다.

그 농부가 말 했을 리는 없지만, ‘ 잘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소크라테스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잘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 의롭게 사는 것은 모두가 매한가지(Living well beautifully and justly are all one thing)이라고 했다.

물론 아름답고 의롭게 산다는 것도 추상적이고 주관 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돈 없고 많이 배우지 못한 그 농부처럼 잘 살아야 갰다는 마음, 즉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에게 큰 도움주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마음 자체가 인간의 기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내가 한 없이 부끄럽다. 나의 숙명이 마주 막 순간에 “내가 정말 한 평생 ”잘 살 고 가는 가?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잘 살았다고 대답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이 세상에 해피엔딩이 별로 없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많아 서인지도 모른다. <김찬집 수필가> 

김찬집 수필가 그는...

   
김찬집 수필가.<헤드라인제주>

수필가 김찬집은 평생 공직자의 길을 걷다 명예퇴직 후 2003년 5월 시사문단에 등단하면서 수필집 3권을 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헤드라인제주에서 고정칼럼을 통해 여성, 건강, 지역 정치, 시대가치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려고 합니다.

칼럼을 통해 독자와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다는 수필가 김찬집의 사방팔방 이야기.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찬집 객원필진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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