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시동걸린 그녀, "'컴퓨터 왕'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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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시동걸린 그녀, "'컴퓨터 왕'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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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장애인 IT경진대회 최우수 강윤미씨의 '도전'
"미역국 한번 먹은 후 해냈어요...'마음이'가 있어 행복"
"빨아야지.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의 창문을 온 몸으로 밀어 열고 돌아와 내 맘대로 접어지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져 내리는 얇은 홑이불을 몇 분이나 끌어안고 싸움질을 한다.
이젠 세탁기 앞까지 걸어가 담기만 하면 된다.
한쪽 무릎을 침대에 붙이고 둥실거리는 두 팔 안의 이불덩어리를 안고 침대 끝에 두발로 서기까지 족히 10분은 넘게 결렸다.
한숨을 쉴 틈도 없이 이불을 끌어안은 두 팔이 경련을 일으키기 전에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으로 세탁기를 향해 간다. 가는 길 중간엔 두 팔을 활짝 펴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걸치고 앉은 빨래걸이가 말똥거리며 얄밉게 보고 있다.
최대한 이불을 어디에도 걸려 툭, 제 맘대로 떨어져버리게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빨래대가 놓인 좁은 통로를 지나본다.
휴우....
다행이다. 유리창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불을 세탁기 앞까지 가지고 가는데 성공이다." -사는 이야기 '365일' 中

도우미견(犬) '마음이'와 전동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는 강윤미씨(46. 제주시 도련동)가 2007년 장마가 끝날 무렵 쓴 '사는 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여름 홑이불 하나를 빨래하는데도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사는 이야기처럼, 그의 생활은 언제나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늦깎이로 대학(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문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워딩을 할 때에도 그는 자판이 힘겹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소중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25일 열린 KT제주배 전도 장애인 IT경진대회에서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자세한 소식과 현재 그녀의 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가 사는 동네를 찾아갔다.

도우미견(犬) '마음이'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윤미씨. <헤드라인제주>

◇ "IT경진대회요?...사실 '미역국 한냄비' 먹었어요"

원활한 거동이 힘든 그녀였지만, 눈에는 깊은 내공이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실 이러한 수상 뒤에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었다고 그녀는 털어놨다. 지난해 똑같은 대회에 출전해 고배를 마셨다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역국을 한냄비'나 마셨단다.

그녀가 처음 컴퓨터의 재미를 붙인 건 2011년 가을이었다. 당시 다니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컴퓨터 교실이 그 계기였다. 강윤미씨는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컴퓨터의 '맛'을 봤다고 한다.

컴퓨터 교실에 인연은 더욱 깊어져 제주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컴퓨터교실로 이어졌다.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강윤미씨는 봄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강사의 권유로 IT경진대회에 출전했다.

그녀는 "살짝 기대를 했던 탓인지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미역국을 한사발도 아니고 한냄비나 마셨던 첫 시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제의 난이도도 어려웠지만, 거기에 심리적 부담감이 더해져 본래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 윤미씨는 "나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특히 컴퓨터를 가르쳐 준 강사님에게 죄송스러웠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일까 컴퓨터를 배우는 그녀의 자세는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내년 시험에는 반드시 입상권에 들어 자신과 강사의 얼굴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컴퓨터 공부가 다시 1년이 됐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미 지나왔던 길이었기에 그랬을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그녀의 손놀림은 한층 여유로웠다. 경험이 그녀를 크고 강하게 만든 것이다. 이날 그녀의 대회 성적은 '최우수상'. 지체장애인 부문에서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결코 쉽게 얻은 결과는 아니다. 그녀는 "앉은 자세로 컴퓨터를 하기 위해 한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상체를 지탱해야 했다. 70분간의 대회가 마치 7시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녀는 '미역국 한냄비'를 마시고 얻은 힘으로, 이듬해에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 "대학생활요?...꽁했던 마음 푸는 계기가 됐어요"

그의 늦깎이 성공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였지만,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 졸업장까지 따낸 사람이 그녀이다. 이러한 경험은 고스란히 그녀의 기억 속에 각인돼 그녀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는 "2007년 제주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던 때를 떠올리면, 내 스스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접었다가 장애인야간학교를 통해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특히, 단 한번의 '미역국'도 마시지 않고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는, 장애인야간학교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로 통했었다.

이런 그도 실제 대학생활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과제 때문에 밤을 세운 건 다반사였다. 밤을 세워도 제대로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더 큰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이후 제대로된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계속 집안에서만 지냈다"며, "그러나 보니 나를 제외한 주변환경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나의 성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중에서 그를 가장 괴롭혔던 생각은 '사회와의 분리'였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포기 속에서 수많은 좌절을 맛봤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와 점점 분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특히 나를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문제로 힘들어 할 당시 큰 힘이 돼 준건 이맘때 그녀에게 입양된 도우미견(犬) '마음이'였다. 그는 "마음이 덕에 주변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도 하면서 위축됐던 마음이 누그러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감은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눈덩이와 같다"며 "이후에 학교 생활에서 점점 자신감을 더 갖게 됐고, 친구들도 한두명씩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이'는 올해로 8살 먹은 수컷개로, 레브라도 리트리버라는 고귀한(?) 혈통을 갖고 있는 친절한 견공이다. 실제 방문을 여닫거나, 전등불 스위치를 켜는 일, 쓰레기 버리기 등 엄청난 일들을 척척 수행해 윤미씨 돕고 있다.

한편, 강씨는 "대학생활 중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어떤 날은 이분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부채의식 때문에 어깨가 무겁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대학생활이 신나고 힘이 됐다"며 "이러한 대학생활이 예전에 가졌던 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했던 꽁한 마음을 푸는 계기가 됐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도우미견(犬) '마음이'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윤미씨. <헤드라인제주>

◇ "공간의 폭력...장애인은 성별이 없다고요?"

그는 최근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장애인편의시설이 단 한곳만 갖춰져 있으면, 아무 불편없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안다"면서 말문을 뗐다.

그러면서 "현재 설치된 장애인시설은 대부분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생활과 생존을 돕는 산소호흡기와 같은 것"이라며, "이러한 장애인시설마저 장애 수요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경우들을 볼 때면 가끔 '공간의 폭력'이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녀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성별을 갖고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라는 강렬한 한마디를 전했다.

그녀는 "현재 장애인에 대한 처우는 많이 좋아진 상태이다. 당장 내일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한 단계는 지난 것 같다. 그러나 장애인도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은 계속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문화적, 사회적 욕구에 대해서 장애인은 여전히 배제된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장애인이 성적 욕구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면 그 순간 장애인은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분류돼 버린다"며 "옛날 어머니시대엔 이러한 처우가 겉으로 분명히 드러났다면 지금은 이러한 처우들이 암암리에 묵인돼 버리는 시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단적인 예로 장애인화장실의 경우 양성이 따로 구분된 화장실은 찾아보기 힘든게 장애인 인식에 대한 현주소다. 물론 지금은 많이 개선돼 남, 여 장애인화장실이 구분돼 있으나,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별된 화장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요? 가정폭력 상담사가 되고 싶어요"

요새 강윤미씨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앞으로 가정 폭력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며 요새 제주도설문대여성센터에서 운영하는 가정폭력 상담 관련 교육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했다.

강씨는 "현재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가정의 폭력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은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 안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나는 내가 지금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내가 지금 꾸는 꿈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지체장애인, 여성, 생활수급자 등 수많은 약자의 이름으로 40여년의 인생을 살아온 그녀가 다른 약자들을 돕기 위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일 때 시작해 날이 불그스름해 질 무렵 인터뷰는 끝이 났다.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부터 제주지역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 활동보조인제도를 비롯한 장애인 제도 등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가 많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꼽자면 긴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도 그녀에게서는 사람들의 말의 귀를 기울여주고, 아픔의 공감하는 최고의 상담가적 기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헤드라인제주>

<신동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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