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각짤각 엿장수 아저씨가 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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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 <45>과거는 오늘의 밀알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흐르는 세월을 따라 한 해 두 해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게 되고 성인이 되면서 사회에 뛰어들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 보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뭔가 해보려 노력하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꿈 많던 20대 젊음을 뭐하나 이룬 것 없이 보내고, 30대 후반에야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나니 남들은 부러워도 하지만 정작 나는 겁부터 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일까.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세상사라는 때가 묻지 않은 걱정과 잡념이 없었던 철부지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1970년대는 지금처럼 멋진 로봇 장난감이나 컴퓨터가 있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동네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쓰다 남은 나무 조각 하나가 우리들의 장난감이자 놀이기구였다. 요즘 애들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집안 형편이 다 비슷하여 부모님이 아침 새벽에 일 나가시면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뜨고 씻는 둥 마는 둥하고서 집 밖으로 나가보면 벌써 동네 또래 친구들은 그날 할 놀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독 놀이를 좋아했던 나는 특히 구슬치기와 종이 딱지치기를 잘하여 동네 친구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동시에 미움을 많이 샀다.

미움을 받을라치면 그날 딴 딱지와 구슬을 조금씩 나눠주면 삐쳤던 친구들은 금세 마음 풀려 다시 친해지곤 했다.

아침에 구슬 10개와 딱지 100장을 갖고 나가면 집에 들어올 때는 곱배기로 챙기고와서 부모님 몰래 이불장 속에 숨겨뒀다가 이불을 정리하시는 어머니께 들켜 혼나기도 했었다.

또한 우리 동네는 다른 동네와 달리 골목이 비좁았는데 나무로 어미자와 새끼 자를 만들어 자치기를 하는데, 다른 애들보다 팔 힘이 좋았던 내가 친 새끼 자가 하필 동네에서 제일 독하기로 소문난 할아버지네 집 유리창을 깨서 부모님을 난처하게 한 적도 있다.

동네에 굴러다니는 매끈한 돌을 골라 목대를 맞히는 비석치기 놀이도 하였고, 겨울철이면 연 날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가 연 날리기였던 것 같다. 연이 띄워지면 마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내가 몸이 불편해서 친구가 일단 연을 띄운 후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다른 연들보다도 유독 높이 연을 날렸다.

지금 생각하건대, 내가 지닌 장애와 모든 컴플렉스를 연으로 대신 풀려고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동네 형이 먼저 연싸움을 하자고 해서 그 형 연줄이 끊어져 연이 날아가 버리자 내 연도 빼앗아가고 흠씬 두들겨 맞은 적도 있다.

억울했지만 그때만 해도 나이가 한 살만 많아도 동네 형들한테 덤벼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눈썰매가 아닐까? 내가 살던 동네는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가파른 동산이 많았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어른들은 길이 미끄럽지 않게 다 쓴 하얀 연탄재를 갖다 사방에 뿌렸고, 우리는 연탄재로 눈을 뭉쳐서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비료포대를 들고 나와 동산자체를 빙판으로 만들어 온종일 썰매를 타기도 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엿장수 아저씨의 등장이다. 짤각짤각 하는 사각가위 소리만 나면 동네는 엿을 바꿀 물건을 찾아 굴러다니는 빈병은 물론 녹슨 구리줄, 철사 등을 구하러 다니느라 동으로 서로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심지어 한 친구는 자기는 커서 엿장수가 되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지금쯤 큰 고물상 주인이 되었을까. 고물상만 있으면 잘 살고 있을 텐데….

잠시나마 유년시절을 돌아봤더니 마음이 너무 후련하다. 놀이기구 없어도 즐겁고 행복했던 그 시절.
요즘 세대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상상이 안 되겠지?

지금의 나는 현실이다. 아무리 좋았던 추억이라 해도 흘러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거늘. 오늘에 만족하자.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듯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의 과거가 될 것인데, 유년시절처럼 좋은 추억이 되기 위해 오늘, 지금에 충실하고 현실을 받아들여 나가자. <이성복 객원필진>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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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2013-12-19 15:43:47 | 112.***.***.33
어릴때 하나의 추억속으로 묻어야하는 아쉬움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