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텃밭' 채소, "엄마 정성 듬뿍 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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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텃밭' 채소, "엄마 정성 듬뿍 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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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언니네텃밭 우영 협동조합' 현애자 전 의원
여성농업인 텃밭공동체 사업 '구슬땀'...정치활동은 어떻게?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의 한 텃밭.

호박과 고추 등 가을 채소 10여가지가 좁디좁은 텃밭에 저마다의 공간을 차지하며 빽빽히 영글어가는 모습을 뽐내고 있다.

제주 첫 여성 국회의원을 지낸 현애자(51) 전 의원이 요즘 매일같이 다니는 장소다.

지난 2008년 여성농민 소득 사업 차원에서 설립한 '언니네텃밭 우영 협동조합' 가공공장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현 전 의원은 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언니네텃밭 공동체 사업은 여성 농민들이 주체가 돼 제철 토종 채소를 소비자들과 직거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농민사업이다.

현애자 협동조합 상임이사가 텃밭을 설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언니네 텃밭 공동체 사업', 어떤 구상에서?

남성이 작물의 결정과 파종, 수확 등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 보조적인 역할로 소외된 여성 농민들의 자립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텃밭농사는 대규모로 이뤄지는 작목과는 달리 여성농민들이 생산의 모든 것을 온전히 자기몫으로 했던 것이다보니, 여성농민이 자영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형태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가족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 안전한 먹거리를 만든 우리 어머니들의 농사를 계승하자는 취지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현재 조합원은 7명. 이래서야 무슨 사업이 되겠나 싶었다.

"이제야 조합형태로 가다보니 회원이 많이 없어요. 그 전에는 공동체 회원으로 15명까지 갔었는데 저희들의 요건에 맞지 않는 분들을 내보냈습니다. 나중에 조건 갖춰지면 다시 오시라고...(웃음)"

조합의 가입조건은 은근히 까다롭다. 반드시 여성농민이 직접 농사를 지어야하고 제철 채소가 아닌 다른 소득작물을 재배할 수 없다.

때문에 일부 농민들과는 가입요건을 두고 승강이도 제법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길게 보고 있어요. 규모화된 농업은 반드시 시장의 경쟁논리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농민들이 이길 방법이 없죠. 더디 가더라도 원칙을 갖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인 농업형태이어야 합니다."

◇ 언니네 텃밭 먹거리 사업 '농민장터' 인기

언니네텃밭 먹거리 사업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기본인 '꾸러미 사업'은 월 5만원에서 10만원 등 소비자 자신이 구좌를 개설해 4회에 걸쳐 그 시기에 생산되는 제철채소를 공급받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농민장터'와 '온라인판매' 시스템이다.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제철 채소를 공급받을 수 있고 여성농민들은 계획생산이 가능한 형태죠. 대량생산 농산물을 그냥 소비하는 기존과는 다른 유통 생태계를 갖춘 셈입니다. 앞으로는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월 1회씩 토요농민장터를 열려고 합니다."

입소문이 퍼진 덕분에 지역 부녀회에서 부정기적으로 농민장터를 개최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협동조합은 여성농민들이 텃밭에서 직접 가꾼 채소를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게 된다. <헤드라인제주>

◇ 정치인과 여성농업인...정치 활동은 어떻게?

인터뷰 도중 화제를 '정치 얘기'로 잠깐 돌렸다.

농민이기도 하지만 '정치'는 그에게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지금도 당적을 갖고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언제더라? 8월에 정당가입을 했습니다. 정의당으로요. 제가 원래는 민주노동당을 거쳐 통합진보당에 있었죠."

당적을 바꾼 배경이 궁금해졌다.

"작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 때 노력을 했지만 그게 바라는대로 되지 않았어요...탈당을 그때 바로 해야하는 것이 맞는데, 제가 속한 여성농민회 전국연합의 총회 결의가 늦어지다 보니 바로 탈당을 못했어요. 한동안은 당적 없이 지내다 정의당에 가입했습니다."

정치 얘기가 시작되자 밝았던 그의 표정이 이유를 모를 그늘이 드리워졌다.

"정당활동을하며 당 내부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고요, 통합과 분당 과정에서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비약해야 한다는 절실함은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여러면에서 많은 성장과 혁신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나 당 전체적으로 국민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실력도 부족하고..."

그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바는 아니지만 총선과 지난 대선에서의 진보진영의 참패에 대한 죄의식을 지울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를 물었다.

"제가 정의당을 가입했다고 해서 진보정당을 향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서 뭘 하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예요. 통합진보당 사태 후에 지역주민들을 뵐 면목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지난 총선때 26.5%의 지지를 해주셨던 시민들인데 저희가 죄를 지은거죠."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 새롭게 희망을 가질 마음을 어떻게 갖게 할지 지금으로서는 답이 보이지 않아요.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다시 한번 만들어가야한다는 마음은 절실합니다."

주제를 돌릴까했는데 그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진보정당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마인드를 갖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보의 가치와 의제들은 즐겁고 기쁜 것인데 정치는 너무 무겁고 힘들지 않았나해요. 우리가 진보적이고 즐거워지고 대안세력으로써 실력을 갖추고 시민들이 느낄 수 있게하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특히 일상생활을 간과한 부분에 대해 뒤늦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과정에서 저의 경우 농민으로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주민으로서 나의 역할을 다했는가? 주변의 일을 부차적으로 치부하고 결과적으로 이런 삶의 내용은 없었던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제 균형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균형이 잡히니까 감정 조절도 잘되고(웃음)...양육이라든가 살림문제, 가정사 돌보는 것들을 지금은 다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정치를 하더라도 그런 것들은 온전하게 하면서 하려고 합니다."

한때 결연하고 강고했던 그의 눈빛은 확실히 많이 부드러워졌다. 텃밭을 돌보는 손길도 그러하리라 기대한다. <헤드라인제주>

<고재일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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