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은 엄두도 못낼 '명품 대장간'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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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은 엄두도 못낼 '명품 대장간'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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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50년 전통 제주대장간 '대장장인' 김태부씨
살인적인 더위 감내..."공장에서 찍어낸 농기구와는 달라"

비구름도 도망간 듯 8월의 여름날은 무더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새어 나오는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그러나, 노인에게 이 정도 더위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빛 바랜 모루와 손 때 묻은 망치는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더울게 뭐 있어. 그냥 조금 땀 흘리고 마는거지." 여름철 무더위 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생수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다시 화덕 앞으로 다가서는 김태부씨(70).

제주시 오라1동 소재 '제주전통 대장간'에서는 이 같은 풍경이 50여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농기구 제작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제주전통대장간 김태부씨. <헤드라인제주>
   
제주전통대장간 김태부씨와 부인 박유례씨, 딸 김혜영씨(왼쪽부터). <헤드라인제주>

# 1000도 육박하는 화덕, 담금질만 수 차례

제주전통 대장간은 낫이나 골갱이(호미), 해녀 갈쿠리, 부엌칼, 괭이 등의 농기구와 생활도구를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곳이다. 장이 서지 않는 날 제품을 만들어 놓고 장이 들어서면 제품을 진열해 놓는다.

혹자는 제주지역에 대장간이 아직도 남아있었냐며 크게 놀라곤 하지만, 그의 대장간은 이미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명품 제조사'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떼 돈'을 벌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쏟은 정성과 시간에 비해 노동의 대가는 다소 부족하다.

"농기구 하나에 7000-8000원쯤 받아요. 수리비는 3000원 정도에요. 그런데 그것도 비싸다고들 뭐라 그래. 쇳 값은 둘째치고 사람의 공력이 들어가는데..." 속 사정을 몰라주니 야속한 마음도 없지 않다.

마음 먹고 제품을 만들면 하루에 100여개에서 150여개 정도 생산된다.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담금질을 할 경우 화덕의 최고 온도는 1000도에 육박한다. 오래 달궈지면 달궈질 수록 쇠는 더욱 단단해진다. "보통 새벽 5시쯤부터 작업을 해야 해요. 날 더우면 사람 죽을 수도 있어."

역대급 무더위를 기록하고 있는 날에도, 그의 손은 연신 화로를 들락날락했다. 벌겋게 달아진 쇳덩이가 몇 번 내리치기도 전에 식어버릴 수 있어 그 흔한 선풍기 바람조차 쐴 수 없는 작업환경이다.

# 소문난 '명품 농기구'..."짝퉁까지 판 칠 정도"

고품질로 소문난 제주전통대장간에서 제작된 생활도구는 장에서도 큰 인기를 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농기구는 고된 농삿일의 든든한 파트너다.

심지어 우연찮케 제주를 방문했다가 사용한 농기구의 품질이 너무 좋아 육지부에서의 우편주문도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현재 대장간 내 농기구의 제고도 남아있지 않았다.

호미의 날에는 동그라미 안에 조그맣게 '김'이라는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김태부씨의 대장간 제품만 받을 수 있는 '명품 인증'이다.

"요즘에는 농기구도 공장에서 찍어내고 있잖아.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된 제품일 수 없거든요." 수 차례의 담금질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농기구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수제 농기구의 성능 차이는 제주지역 농민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최근 중국산 농기구도 대거 유입되고 있는데, 제주전통대장간의 트레이드 마크인 '김'자가 새겨져서 들어온다. '명품 낫'을 어설프게 따라하려는 '짝퉁 낫'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농기구 제작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제주전통대장간 김태부씨. <헤드라인제주>
   
제주전통대장간 제품을 인증하는 '김' 마크가 찍힌 낫. <헤드라인제주>
농기구 제작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제주전통대장간 박유례씨. <헤드라인제주>

# 대장장이의 '자부심'..."20년쯤 일 해야죠"

고되고 힘든 작업 환경이지만 그의 곁을 지켜 준 가족들은 항상 큰 힘이 되곤 한다. 현재 제주전통대장간은 대표인 김태부씨와 그의 아내 박유례씨(70), 딸 김혜영씨(47)가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화덕에서 농기구의 외형을 만들어 놓으면 부인은 날카롭게 날을 간다. 딸은 마무리 작업과 장에 내다파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눈만 마주쳐도 호흡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처음에는 종업원도 데려다 쓰고 그랬지. 그런데 요즘 세상에 누가 이 힘든일을 하려고 하나요? 나 정도 되니까 먹고 살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야."

더위도 더위지만 힘깨나 쓰는 장정도 연신 내리치는 망치질은 고될 수 밖에 없다. 며칠 일하다가 그만 두는 것을 매번 바라보느니 가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심지어 선불금 명목으로 목돈을 챙기고 직원이 달아난 사례까지 있었다. 고된 길을 감내하는 것은 무엇보다 대장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아직 밀려 있는 물량이 많다면서 다시 화덕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김태부씨.

"사는게 별거 있나. 힘 닿는데 까지 열심히 해 봐야지. 앞으로 한 20년쯤 더 일할 수 있을 거에요."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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